敗北

“노련한 지배자는 신민들을 수동적이고 조직되지 못한 상태로 유지할 수도 있다. 소규모 지배 집단은 다양한 분할 통치 전략을 구사해 반란의 위협을 막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엘리트를 움직이는 유인들은 적극적인 시민들이 없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외적 충격뿐일 것이다. 만일 갑자기 외국의 엘리트들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면, 특정 국가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제한할 매우 강력한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법적 확실성, 개인의 권리, 민주적 영향력 등을 아래쪽으로 넘기고 협의에 참여하는 집단의 범위를 넓히고 일반 신민들에게 법적 참여권을 주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신민들이 현 정권에 이해관계가 있는 존재들로 바뀌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특정 국가의 엘리트들이 외국의 엘리트들에게 협력하거나 예속된다면, 그들은 비참여적·비재분배적·규제적·억압적 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강한 유혹에 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투르게 흉내만 낸 법의 지배가 출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 그것은 극소수에게만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고 극소수만이 법적 도구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제1장 법의 지배의 계보 中

어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서 사랑했다지만 나는 그의 어리석음에 치를 떨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다면 권력을 시장에 제도적으로 넘긴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다. 상식이 통하는 정상국가를 향한 열망을 현실에 구현하고 싶었다면 그는 더 현명했어야 한다. 소탈한 사진 몇 장을 남겼다고 그를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기억한다면, 정작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그를 미워하는 기업인들만큼 멍청한 놈이 될 뿐이다.

이 나라 ‘메인스트림’은 어떠한 종류의 자기 제한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직과 국회 과반수 의석으로도 주류가 범람하는 꼴을 다듬는 데 실패했다. 사회에 뿌리내린 기반 없이, 선거로 획득한 권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저 세찬 물길을 길들이는 방법은 차근차근 조직을 형성하는 방법뿐이다. 당신이 휩쓸려 간 과정을 낱낱이 되새기며 둑을 쌓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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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齒腐心

1.

국가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집행위원회로 부리는 ‘人’을 元首로 선출한 나라에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까닭을 모르는 앵무새 무리가 어쨌거나 폭력은 나쁘다고 옹알이는 꼴이 진귀하지는 않았다. 용산에서 사람 다섯이 자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법절차의 원칙이니 비례의 원칙이니 하는 올곧은 말들을 장님처럼 더듬어 보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름다워서 무서웠다. 어떻게 일어난 영문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어날 때마다 지금 이 충동을 이겨내야 합격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어느 생각이 魔軍인지 모를 일이었다.

행정법은 경찰법에서 비롯하였다. 법으로 국가의 경찰력 행사를 제한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상법만큼 사람이 몰리는 전공은 행정법이다. 재건축 규제에 해박하면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아득한 망각과 각광의 간극에 행정법의 기원과 현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잿더미가 들어앉았다. 누가 지어낸 사례도 이보다 무참하거나 광막하지 않다. 이래저래 교과서는 현실 앞에 초라하다. 이제 그냥 이런 주제 앞에서는 “보상을 받았으니 진압은 정당했다.”라고 써야 하지는 않을까. 국민이 법을 지키는 게 법치라면서, 소크라테스가 호명되는 나라에서는….

2.

여름 시험장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데 다시 실패했다. 당연한 결과다. 준비에 몰입한 기간부터 짧았다. 민법 교재를 한 번 읽느니 마느니 하다가 9월을 맞이했다.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두 달 동안 매일 오전 여덟 시부터 열한 시까지 책상에 붙어 있었고 오가는 지하철에서 최신판례와 조문을 읽었지만, 이 기간에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시험 당일이 임박한 시점에 확인하지 않았던 내용은 시험장에서 맞닥뜨리면 찰나 동안 정확하게 可否를 판단할 수 없다. 공들여 읽어둔 교재가 없어서 문제 푸는 연습만 되풀이한 탓에 마지막에 정리한 내용의 폭이 좁았다. 양을 줄여나간다는 말에 사로잡혀, 문제를 풀면서 틀린 부분만 반복해서 들춰본 게 실책이었다. 최후의 일주일 동안 출제 가능한 내용을 모두 읽어두어야 한다.

다시 내년 1차 시험을 준비한다. 한 해를 오롯하게 바치고도 낙방하거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험에 열중하지 못한다면 이 시험에 합격할 자질이 없는 것이다.

3.

나는 LSD 중독자이다. 게으르고(lazy), 성긴 논리로 자신을 비호하며(sophistic), 번다한 주제에 대해 관심만 많다(dilettante). 이것들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일’에 매진하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 시간을 살해하는 데 탐닉하지 않고, 건조한 일과를 경작하는 일은 체제에 투항하는 짓과 무관하다.

텍스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는 착각은 자존의 근거가 아니라 오만의 증거이다. 태만의 대가를 한탄하거나 타인을 조롱하며 위안을 얻으면 안 된다.

여력이 있으면, 정의와 형평을 궁리하기 전에 <<니코마코스 윤리학>>부터 읽을 노릇이다. 문화연구를 배워서 전자오락 비평을 해보겠다거나, 특정 세부 전공 분야를 골라 최신의 이론을 세워보겠다는 종류의 망상은 깨끗하게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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呪文

우연한 계기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었다.

1부 ‘河口’의 배경인 江津은 낙동강 하구에 자리 잡은 마을인데 이곳에 흘러들어온 주인공의 형은 골재를 캐다 판다. 현재 부산광역시에서 낙동강 서쪽은 강서구이고, 강에서 바로 동쪽에 사하구, 사상구, 북구가 최하류에서부터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沙上區에서 13년을 살았던 탓인지, 모래 장사꾼 얘기가 새삼스러웠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 삼아 권력의 단물을 맛본 인간들에 대한 예언 같은 주인공의 자기검토는 신랄하다.

기껏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소년시절의 충동적인 모험의 연장이며, 추구하는 것 또한 영광과 승리의 동참자로서 나누게 될 자랑스러운 기억 따위나 아닐까. 막연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지성의 정신적인 자위행위거나 우리도 언젠가 빼앗기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노라는, 장차 혜택받는 계층에 끼어들었을 때의 변명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돈 주고 산 책이 아니다 보니 다른 사람이 강조해 놓은 부분도 보게 되었다.

다만 싫은 것은 지성인 내지 대학생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획일주의나 정의와 양심과 용기는 참여하는 쪽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식의 흑백논리요. 사회의 의식도 문화의 일부일진대, 그 다양성은 상호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오. 거리로 뛰어나가 기성세대의 불의와 부패를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남아 학문적 고구(考究)나 예술적 연마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뜻이오.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선택하는 의식의 순수함과 실천의 성실함일 거요…….

1981년, 부채의식에 시달렸을 서생들에게 이런 문장은 어떤 위무를 제공했을까. 어쨌거나 나는 진정성을 운운하는 글을 읽지 않듯이 순수와 성실을 떠드는 자를 믿지 않는다. 그러한 가치는 몸으로 드러날 뿐이다. 가끔 언론에 실리는 이문열의 말을 볼 때마다 마루야마 겐지의 삶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썼다면서 인용되는 글귀는 꽤 자극적이다. 실은 이 문장에 홀려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입시를 저런 태도로 대하였다. 아직도 수험생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빙충맞지만, 나도 이제 나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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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期

손민한과 이대호를 제외하면 이름이라도 아는 선수 하나 없는 팀이 페넌트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반기는 나를 발견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침울해졌다. 세상을 세로로 나누는 감정에 기반을 둔 대립 구도를 두고 즐거워하다니 망측한 일이다. 더는 어떤 국가대항 운동경기 중계를 보아도 흥겨워하지 않게 되어 웬만큼 수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간혹 내 입에서 삐져나오는 방언의 흔적처럼, 이 지저분한 사고방식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태제과의 상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꼬마는 이제 서울 생활 중에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가끔 뻔뻔하게 느껴진다. 어떤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 본래 말투를 버리는데, 저들은 저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해 본적을 바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저렸다. 제 말씨와 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현존하는 대한민국. 옛날 강준만이 뱉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발언을 이제는 아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다고, 감히 말해도 괜찮을지….

언제부터인가 동향 출신이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이 부러웠다. 그들이 그 팀을 응원하는 데는 연고가 아닌 다른 까닭이 있을 테니. 세상을 가로로 나누는 기준에 기원을 둔 스포츠 팀이 있다면 나도 관심을 쏟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스날처럼 노동조합에 연원을 둔 팀이 없다. 지역감정이라 해도 FC 바르셀로나를 성원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심정은 납득이 된다. 해태 타이거즈가 승승장구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호남 사람들도 비슷한 심사였을까.

도대체 왜 나는 ’우리’가 이겼다는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걸까. 편한 마음으로 롯데를 아끼던 시기를 되새겨 보니 짐작이 간다. 한국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92년은 걱정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삼당합당이야 어쨌든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노동자 실질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도산하지 않은 신발제조회사에 근무하면서, 공장에 위장취업한 학생운동가를 적발하기도 했던 촉망받는 중간간부였다.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몰락할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견실한 중소기업의 이사 정도까지 지위가 올라갔을 테고, 어머니는 허리둘레 24인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삶을 누리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진정으로 ‘달콤한 가정’이라는 중간계급의 꿈이 허투루 들리던 때가 아니었다.

욕구를 대부분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보였던 호시절을 호출했나 보다. 잠실 야구장에 한 번쯤 찾아 가볼까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근심 없던 유년을 추억하는 짓은 정신을 퇴행시킬 뿐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과거를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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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生獸

1.

지난주 어느 날, 귀가하니 거실 TV에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보통 동생이 토크쇼를 보고 있기 마련인데, 베이징 올림픽 중계 때문에 방영 시간이 미루어진 듯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돈 잘 버는 남자 사업가가 유명 여배우와 이혼 소송을 벌이는 줄거리였다. 이어지는 법정 장면에서 나는 경악했다. 온갖 기자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작가는 최근 간통죄 위헌제청신청을 했던 여인의 재판을 다룬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보지 못했나? 가사재판은 비공개가 원칙이라, 취재진이 법정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던데.

판사가 읽은 판결주문도 가관이었다. 이혼하려는 부부가 혼인 전에 만약 앞으로 이혼하게 된다면 남자 재산을 떼주기로 한 부부재산계약을 맺었다면서, 그걸 근거로 공유물 가운데 500억을 분할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민법제도라 할 수 있는 부부재산계약을 어디서 찾았는지 용하기는 하다만, 아쉽게도 이 제도는 혼인 관계가 아무런 문제 없는 동안 부부가 취득하는 재산에 관하여 법에서 정한 부부별산제와 다른 내용으로 규율할 수 있도록 사적자치의 영역을 가족법에서 넓혀 놓았을 뿐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편이 재산을 취득한 과정에 아내가 기여한 바가 있어야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 가운데 아내가 제 몫을 주장할 수 있는 법인데, 그저 부부재산계약을 들먹이며 재산을 뜯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어지는 상황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패소한 남자가 대표로 있는 법인이 무슨 자산운용회사인 듯했는데, 판결 보도가 나가자마자 투자자들이 돈 내놓으라면서 들이닥쳤다. 펀드런이라는 친절한 자막까지 뜨면서. 박현주가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 500억을 물게 되었다고 미래에셋에 돈 맡긴 사람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생기겠는가. 개인과 법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작가라고 볼 수밖에.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경영학 강사가 가르치는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제도에 대한 이해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법학개론 같은 쓸데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찬 책 말고, 근대 법학에 대한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의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2.

일곱 번째 학기 성적을 확인하고 꽤 오랫동안 우울했다. 교재를 읽고 외워서 답안지에 쏟아내는 능력이 그리 출중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단순암기능력은 비슷한 수험능력을 지닌 집단 가운데 잘해봐야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준비하는 시험에 과연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수험생은 압류와 가압류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관련 판례를 암기한다. 그러고도 2차 시험까지 붙을 수 있는 시험이다. 나는 그게 되지 않는다. 외워야 할 까닭이 없으면 자극을 받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를 낑낑대며 머릿속에 구겨 넣는 작업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시험이 끝나면 밑 빠진 독에 채웠던 물처럼 빠져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체화되는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공부를 하며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심리적으로 금지된 욕망을 갈구하는 짓에 불과할 뿐이다. 나처럼 나태한 놈은 공부가 주업이 되면 또 도망치고 말 것이다.

3.

이동통신사와 맺었던 계약을 해지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생활에 심대한 지장이 생기고, 직접 버는 돈으로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연락할 일이 있는 지인들은 이곳 우측 최상단에 있는 게시물 말미에 첨부된 전자우편주소를 활용해 주시길. 여기까지 올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는 교우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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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接 民主主義의 그림자

어느 대학교에 원서를 넣으면서 첨부한 자기소개서에는 돌이켜보면 심히 낯부끄러운 책 다섯 권을 적어 놓았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고등학생 권장도서 목록에 쑤셔 넣은 교수에게 저주 있으라! 책 몇 권으로 바뀐 삶은 얄팍하기 그지 없겠지만, 지금 내 인생의 책을 고르라면 딱 두 권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한 권이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사회학』이다.

로베르트 미헬스는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민주당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활동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과두제의 철칙을 말한다. 근대에 탄생한 어떤 조직도 관료제로 말미암아 이 철칙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정당조차 예외는 아니다. 정당 이론을 펼친 학자 가운데 사회주의 정당에 직접 투신했던 유일한 사람인 미헬스는 대중이 지도자에 이끌리는 경향을 분석하며 대의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민중이 전력을 다하여 권력을 교체한 뒤 만족해하는 것은 가치 “희극”에 가깝다. 그들은 또다시 자기들이 뽑은 지도자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며, 또다시 “잘못 뽑았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주기의 선거를 위해 이를 갈며 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는 ‘국가지도자의 아이러니’다.

대의제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오늘날 한국 상황에서, 역시 대의제는 직접 민주주의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대의제를 부정한 루소의 일반의지 이론을 채택한 결과로 자코뱅 독재가 나타났던 과거를. 2월 혁명의 열매를 삼켰던 보나파르트의 조카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을 잠재운 사나이를.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거꾸러졌던 과정을. 대중의 숭배욕구는 끊임없이 지도자를 소환한다.

21세기에 한국 대중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단에 열광했고, 장갑차에 치인 소녀를 추모했고, 탄핵당한 대통령을 지켜냈고, 황우석과 D-War를 옹호했으며, 미국 쇠고기 수입 협의에 분노한다. 희대의 부동산 임대업자가 물러난 자리에는 독재자의 망령을 팔아먹는 선거의 성처녀가 등극하게 된다. 나는 다시 되뇐다. 인민을 기만하는 파시스트보다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가 낫다고. 포퓰리스트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의 틀 안에 갇혀 있지만, 대중의 직접 동의를 통해 출현하는 파시스트는 대의제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최장집이 노무현 정부를 지켜보며 권력 분립론이 단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던데, 나는 요즘 동일성 민주주의론에 대한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의제를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배부른 소리라고 간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이론은 역사에 기반을 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를 지배하지 않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들을 지배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역사가 기다릴까. 정당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대의제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내놓은 미헬스는 말년에 무솔리니 밑에서 봉사하다 죽었다.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직접 민주주의도 지선한 가치가 결코 아니다. 불발에 그쳤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주민소환제를 작동시킨 원인은 무엇이었나? 혐오 시설 건설로 내려갈 집값 걱정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제도에 대한 발랄한 상상보다, 인민과 고통을 함께하되 인민의 욕망을 넘어서서 죄수의 딜레마를 깨뜨릴 희망의 윤리학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절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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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講義

다섯 시에 비교법입문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세 시부터 시작한 최장집의 마지막 학부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 큰 강당이 빼곡하게 찰 만큼 사람이 많았던 탓에 강의 자료를 챙기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 잠깐 얻어 보았는데, 자신이 직접 설명한 학문적 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 관념론에 대한 언급이 의외였다. 또 자신은 실질적 민주주의론자가 아니라는 언급도 눈에 띄었다.

결론에서 한국 대학은 외형적인 면은 서구 대학과 비견할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영혼이 없다고 비판했다.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이 꼴이라 사회 전체가 낙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개강, 휴강, 종강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학부 시절을 회상하면서 요즘 학부생들에게 차마 무엇인가를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다만 영어 말고 유럽어 하나, 동아시아어 하나를 더 익혀두라는 정도. 언젠가 독일어와 일본어를 독해 가능한 수준까지 익혀 보아야겠다는 결심이 강화되었다. 결국 좋은 정당과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장래에 법학에서 절차주의가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예측과 호응 되는 측면이 많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학자가 될 수 있다면, 절차주의에서 자본과 권력이 절차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데.

예전 세미나 모임 사람들을 만나 밥과 술을 먹고 귀가했다. 또래 중에 아직도 학부생인 놈은 이제 나밖에 없는 듯. 한 친구는 프레시안 기자가 되었다고 하고, 한 선배는 mbn에 취직했다고 한다. 곧 NYU로 나간다는 선배 소식도 들었고. 그러고 보면 거기서 알게 된 어떤 선배가 모 일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다른 경로를 통해 최근에 듣기도 했다. 그건 좀 충격이었다. 예전에 거기 입사했다고 들은 선배와는 달리, 당 활동에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는데.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사실과 사건이 개입했겠지.

오랜만에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난 덕인지,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착상이 떠올랐다. 근대민법의 근본원칙은 인격 동등, 소유권 절대, 계약 자유, 과실 책임으로 정리된다. 이 원칙이 각각 무엇을 타파하려고 등장했는지 파악해야 개념이 쉽게 잡힌다. 근대 자연법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법적으로 고민한 끝에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인격이 동등하다는 의미는 독자적인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던 노예나 농노 제도를 철폐한다는 것이고, 소유권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재산에 붙어 있던 각종 관습적인 권리를 일소한다는 것이다. 근대법은 길드 등에 얽매여 있었던 상인에게 계약을 자유롭게 맺을 수 있게끔 하였고, 이제 개인은 자기가 잘못한 만큼만 책임질 뿐 연좌제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좋은 말로 포장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시민 계급을 위한 원칙이다. 부르주아를 번역하면 시민이고, 시민법은 유산계급에 적용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지 투표권도 없는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고용에 관한 규정이 단순하기 그지없고,  신분제 폐지도 공장 노동자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일종의 이념형이다. 실제로 이 원칙들이 자본주의 발달에 얼마나 기여하였을까?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자산 보유 형태가 이미 유사하였다. 지주가 자본가의 적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시절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인가? 또 장하준은 자유방임주의가 자본주의 성장에 필수적이기는커녕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자유무역이 영국에서 실제 정책으로 펼쳐지기 바로 전까지 구빈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을 통하여 한반도에 근대법이 계수되면서 각각의 원칙들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조선의 신분 제도 폐지는 근대법 계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의용민법 시행으로 사라진 조선의 관습권은 무엇이며,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과실책임의 원칙은 얼마나 엄격하게 준수되었는가? 대한민국 성립 후 이 원칙들의 작동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전통 지주 계급은 근대법 시행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였으며, 한국에서 자본 축적에 근대법 원칙들은 이바지한 바가 있는가?

경제이념으로서 자유주의가 후대에  강조된 측면이 강하다면, 법이념으로서 자유주의에도 비슷한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유적 자유주의 아래 다시 소유권 절대를 주장하는 입장의 기반을 크게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저작권 침해 행위를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하여 마냥 강력하게 규율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도 찾을 수 있을 테고.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P2P나 웹 하드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려 드는 족속의 심리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밑바탕에는 호혜의 원리와 인정 욕구가 존재한다. 오늘날 많은 임금노동자가 영세자본가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소유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 그런데 이제부터는 지하철에서도 사례연습집을 읽을 계획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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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權勢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딱 한 달이 지났다. 팔십 대 중반에 몸소 경운기를 몰다 뒤에서 승용차가 들이박는 바람에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담당 의사가 회복 속도가 젊은이 수준이라고 감탄했을 만큼 강건하셨지만 아흔셋이 고비였다.

오 년 전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등지자 혼자 식사를 차려 드실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가셔야 했다. 장성한 아들은 여섯이었지만 아무도 모시고 살 형편이 못 되었다. 말이 요양원이지 개인이 가정집을 고쳐서 노인 몇 분에게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고 말없이 TV만 보며 소일하는 환경 속에서 육체는 빠르게 쇠약해졌으리라.

족보에만 오른 이름에 들어간 아홉 九 한 글자를 빼면 할아버지는 내게 개인적인 기억을 남기지 않으셨다. 한자 독해 능력으로 봐서 약간의 교육은 받으셨으리라 짐작할 뿐, 조부의 삶이 어떠했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아마도 내 또래는 대체로 조부모와 단절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은 마지막 세대에 속하셨던 그분들이, 일 년을 통틀어 일주일이 되지 않는 명절 연휴동안 숱한 손자들과 일일이 친밀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례식장은 쾌적했다. 빈소 입구부터 때깔 좋은 화환이 도열해 있었고, 영정 곁에는 주일대사 권철현의 이름을 단 꽃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아들들은 고만고만하게 살지만, 외동딸의 남편은 지역에서 유지 노릇 하며 사는 덕분에 얻은 장식품이었다. 접객실은 거의 고모 내외의 지인들로 채워졌다. 아버지를 찾아온 조문객은 없었다.

식장을 지킨 상주만 열에 육박하는지라 할 일이 마땅찮아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 『단테 신곡 강의』와 『타인의 고통』을 종일 읽었다. 첫날밤 혼자 소주병을 들이키다 늦게까지 몸을 추스르지 못한 고인의 다섯째 아들을 제외하면, 아비 잃은 자식들의 슬픔은 굳어진 얼굴 밖에 드러나지 않아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님이 분향할 때마다 상주들이 뱉는 곡소리 속에서 백부와 숙부들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다. 출상을 몇 시간 앞둔 새벽에 사위는 손수 부조함을 뒤집었고, 아들 넷은 지폐를 헤아리는 매형을 제지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선산이 있는 밀양까지는 이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상여로 운구되었지만, 할아버지의 관은 트럭에 실렸다. 고관의 화롱은 장지까지 쫓아왔다. 손자들은 하관을 보지 말라 하여 묘지 아래 비탈에 머물렀다. 봉분이 다 만들어지자 상복을 태우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눈시울을 적셔 본 적 없이 모든 절차가 끝났다.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고등학교 동기들의 부모들은 모두 오만 원이나 십만 원을 놓고 갔는데, 고모부 쪽 부조금은 죄다 삼만 원짜리여서 실속이 없더라고 성토하셨다.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으셨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육신은 이날 묻혔지만 할아버지의 인격은 언제쯤 장사지내졌던 걸까. 태양이 눈 부시지 않았더라도,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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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學徒의 貧困

이번 학기에는 다섯 과목을 듣는데 중간고사를 하나도 치르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까지 서양법제사 보고서를 하나 써내야 했을 뿐이었다. 서양법제사는 본래 게르만법을 가르치는 과목이었는데, 서양법제사와 로마법을 모두 김기창 교수님이 전담하시면서 로마법 2로 강의하고 계신다. 보고서 주제는 ‘actio empti에 대해 설명함’이었는데 문헌을 뒤져보니 로마법 1을 듣지 않은 탓에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별수 없이 조규창 선생님이 쓰신 교과서를 며칠 동안 통독해서 로마법을 개관하고 다시 문헌을 조사했다. 국문으로 작성된 논문은 찾을 수 없었고 곽윤직이 대표편집한 민법주해와 양창수의 민법연구에서 관련된 글을 몇 개 찾아냈다. 표절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시기에 내용을 온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문헌을 정독하면서 보고서 작성에 인용할 만한 구절을 머릿속에 대충 세운 논지 순서대로 전부 공책에 옮기고 일일이 쪽수를 적었다. 그 작업이 끝나자 문헌은 제쳐놓고 공책만 보고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남의 글을 단순하게 짜깁지 않은 A4 용지 3매 분량의 ‘보고서’를 쓰는 데 엿새가 걸렸다.

로마법을 배우니 민법의 뿌리가 보인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소위 담보책임의 본질을 둘러싼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설의 대립이 얼마나 뜬금없는 맥락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 땅에 던져진 법을 완결된 체계로 여긴 채 펼쳐지는 해석론이 어찌나 조악해 보이던지. 이천 년 전에 정리된 법리가 현행법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점이 참으로 많다 보니, 중세를 근대로 이행시킨 3R의 하나로 로마법 계수를 꼽는 이유를 세밀하게 느끼고 있다.

로마법이 근대법의 원형을 보여준다면, 비교법은 법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많은 학자가 유학 다녀온 덕에 간접적으로라도 접할 기회가 많은 독일은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제외하고, 불란서와 영국 및 미국 법제도를 개관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실정법해석론보다 무척 흥미롭다. 특히 재판제도 운용법은 거시비교만 해보아도 한국에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게 된다. 조규창 선생님의 연륜에서 비롯하는 거침 없는 언사를 듣는 일도 퍽 즐겁다.

“이혼 의사가 합치된다고 숙려기간도 없이 합의이혼을 그냥 인정하는 게 말이 되냐? 부부가 치고받고 싸우다가 이혼하자고 도장 찍을 때는 심신상실상태이지 않은가.”
“매매 담보책임 규정을 임대차랑 도급에도 준용하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같어? 하여튼 우리 민법은 병신같이 만들어놔서 도대체 연구하고 싶지가 않아.”
“자네들은 종교가 없나? 그러면 안 되지. 서양문화를 이해하려면 기독교를 잘 알아야해. 나는 김일수 교수처럼 광신도는 아니지만.”

법철학 시간마다 발제를 맡은 학생들이 평소에 얼마나 토론을 해보지 않았는지를 체감한다. 법사상사는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이상돈 교수가 법철학 수업을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리는 까닭은 현실 법문제에서 철학하는 태도를 함양하고자 하는 데 있다. 나와 지인 두 명은 어찌하다 보니 첫 시간에 발표했는데 주제는 법과 도덕이었다. “도덕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 이런 추상적인 논제를 던지면 학부생 수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철저히 구체적인 문제를 다뤘다. 간통죄를 존속시키고 이혼에서 파탄주의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며 동성혼을 금지하고 있는 결혼제도는 핵심도덕을 수호한다기보다 특정한 윤리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각각의 쟁점별로 자료를 제시하고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학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발제자가 준비해 온대로 토론이 진행된 적은 우리가 준비한 주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이런 식이었다. “법경제학에서 법학이 경제학의 침범을 어디까지 법학이 용인할 것인가?”, “법과 권력이나 자본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방안으로 어떠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전통법과 전문법이 같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존엄한가?” 세미나 경험이 부족하니까 논제를 선정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실제 사회 현상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법률해석론에만 골몰하는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면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에 등장한 교양 없는 인간이 된다고 확신하지만, 어쩌겠는가. 쉰소리를 늘어놓아 봤자 시험에 합격한 그들은 한없이 위대할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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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眠

머리가 여물려면 한참 멀었다. 나는 다르리라 앙양된 마음을 겨우내 생활에서 실없이 드러냈고, 내년 2월에는 유효기간이 만료될 토익 점수를 새로 마련하려 지난달 토익 고사장에 들어가야 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열람실에서 낯이 익은 어린 친구들이 2차 시험 교재를 들고 교정을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새로 산 새하얀 민법강의가 부끄러워 칸막이가 없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쓸모없는 자의식을 무너뜨리고 질시로 무장한 속물이 아니 되고서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고상한 놈이 될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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