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009년 2월 20일 아트레온토즈에서 열린 <<인문학 스터디>> 특별강연 중 강유원이 맡은 전반부를 정리한 글이다. 책을 활용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었다.

사람들이 어떤 사태에 대해 말할 때 이미 저마다 지닌 신념 체계에 입각한 경우가 많다. 그보다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인문학은 어떤 사태에 부딪혔을 때 그 사태를 해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무념무상의 태도로 바라보았을 때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적 균형감각을 갖추려면 이 책에 소개된 영역들에 대한 지도를 그려야 한다. 이 책에는 최신의 이론이 없지만, 단어 하나조차 허술하게 쓰인 부분이 없다. 예컨대 36쪽을 보면 <<일리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았다.

더욱이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의 사령관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령관은 아가멤논이다. 아킬레우스는 무기를 다루는 데에서는 분명 가장 뛰어나지만 여러 작은 장군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서구 문학의 기원이 최고 지배자가 아닌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됨으로써, 서구 문명은 모범적인 황제들이나 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고대 또는 초창기의 문학을 보유한 다른 문명과 구별된다.

우리는 또한 <<일리아스>>에서 서구 사상의 또 다른 독특한 측면을 발견한다. 그것은 적, 특히 전체 서사시에서 가장 귀족적인 인물이라 할 용감한 트로이인 헥토르를 동정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애처롭도록 가정적이고 행복한 장면들이 최후를 맞는 도시 트로이에서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이 불타고 난도질될 것을 깨닫는 순간, 고대 그리스인처럼 우리 역시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시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가 서사시의 첫 행이다. 위대한 전사의 용기이자 그의 영웅적 행동의 뿌리인 이 분노는 결국 영웅이 파멸하는 원인임이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일리아스>>의 특징인 개인주의, 적에 대한 배려, 한 인간의 장점이 그 인간의 단점이 된다는 모순을 이보다 간결하게 잘 정리한 문건이 없다. 이런 식으로 40쪽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를, 63쪽에서는 희랍철학이 무엇을 다루는지, 74쪽에서는 지성사와 철학사의 과제에 대해 적어 놓았다. 책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인문학에서 다루는 영역 대부분에 관한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본문을 충실하게 습득한 다음에는 도서 목록을 참조하면 된다. 도서 목록은 크게 원전과 참고도서로 나뉘고, 참고도서는 다시 ①해당 영역 전체를 개괄하는 입문서, ②해당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책, ③세부적인 주제에 관한 입문서와 ④연구서로 구별된다. 참고도서의 경우 ①개괄 입문서, ②개괄 역사책, ③세부주제 입문서, ④세부주제 연구서로 넘어갈 때마다 짧은 밑줄로 구별해 두었다. 종류별로 읽기 쉬운 책부터 차례로 나열하였으니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 개괄 입문서와 역사책은 기본적인 내용이고, 세부주제 입문서와 연구서는 전문적인 내용이다.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세부주제 연구서까지 모두 읽어야겠지만, 다른 영역 공부를 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내용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다.

한국적인 것에 대해 연구해보려면 이 책에서 다룬 주제를 15년 정도 걸쳐 모두 공부해봐야 한다. 세간에는 차이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이나 정통에 대한 까닭 없는 반항이 만연해 있지만, 최신이 최선은 아니다. 몸으로 하는 것은 단계를 건너뛰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데, 정신적인 것은 그럴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정통에 대한 추구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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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

*이 글은 2007년 5월 29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홍기빈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한미FTA 전반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어떤 부문에서는 이익이고 어떤 부문에서는 손해라는 식으로 파편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 일은 대중 기만이다. 한미FTA는 단지 무역에 관련된 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이다. 경제통합에는 관세 면제부터 시작해서 통화까지 통합하는 수준까지 있을 수 있는데, 한국과 미국이 맺은 FTA는 정치경제 제도와 운영에서 같은 수준의 통합이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이러한 FTA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도다. 사실 이 번역은 올바르지 않다. Investor-State Dispute, 줄여서 ISD는 어디까지나 재판이 아니라 중재에 관한 제도이므로, 그냥 투자자-국가 분쟁 정도로 옮기는 게 낫다. 정부에서는 ISD를 외국 투자자가 부담할 위험을 달래주어 안심시키려는 국제 표준이라 말한다. 1930년대에 있었던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국유화나 쿠바 혁명 때 있었던 미국인 소유 사탕수수 농장 몰수 사건은 투자자들의 악몽이다.

혁명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뺏는 일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ISD가 도입된 셈인데, 이 제도의 기원은 중세 유럽 상인법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상인들은 거래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복잡하게 법정에서 해결하기보다 상인 중에 존경받는 사람에게 당사자 둘만 가서 중재받는 길을 주로 택했다. 상인 세계에서는 분쟁 사실이 알려지는 일 자체가 위험하니 당연히 비밀을 지키는 게 원칙이었다.

근대에 국제공법과 사법체계가 성립한 뒤에도 국제거래상인들은 이 방법을 선호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세계은행 산하에 ICSID를 만들어 여기서 이 관행을 흡수하게 되었는데, ICSID에서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했을 때 그 결과에 법적 효력을 갖게 하였다. 그러므로 ICSID를 ISD의 시효로 볼 수도 있으나 엄연히 다른 점이 있다. 본래 ICSID의 판정이 대상국가에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개별 투자 사안마다 그 분쟁 해결의 법적 관할권을 ICSID에 넘긴다는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BIT(양자 간 투자협정)나 FTA에서 ISD 조항이 포함되면 개별 사안마다 명시적인 동의 없이 외국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을 이 중재 절차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ICSID에 속한 한 변호사는 90년대까지 ICSID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였는데 BIT라는 ‘백마 탄 왕자’가 와서 깨워줬다고 말한다.

중재 제도에서 당사자의 동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 중재법이 1966년에 제정되었는 데 아직 널리 이용되지 않는 까닭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중재 절차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ISD는 중재 회부에 대해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 간주 조항을 둔다. 정부는 공공정책은 분쟁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하지만 그조차도 단서 조항을 보면 투자자의 피해가 극심한 경우는 중재 회부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를 어떻게 넣든 포괄적인 사전 동의 조항이 있으면 결국 국가는 중재에 불려가는 수밖에 없다. 투자가가 국가를 중재로 끌어내는 데 필요한 허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협정문에 규정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자체도 중재 절차에서 심사한다. ISD는 국가가 투자자를 규제하는 데 이용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투자자가 일방적으로 국가를 공격하는 제도다.

원래 중재는 국가가 사적 분쟁에 개입하기보다 당사자들 사이의 조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국가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을 사적 분쟁과 같은 절차로 해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제도의 연원은 철저히 사적 영역에 있는데 제도가 적용되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이다. 중재는 결코 재판이 아니다. 법 논리에 의해 판결이 나는 게 아니라 분쟁 당사자인 대상국가와 투자자를 대표하는 변호사 두 명과 심판관 한 명이 모여 시쳇말로 ‘쇼부를 치는 것’이다. 심판관을 선정하는 방식에는 ICSID를 포함해서 다섯 개가 있다. 한미FTA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선택했는데 저마다 절차가 조금씩 다르다. ICSID에는 심판관 목록이 갖춰져 있고 그 중 한 명을 고르는 식인데, 대개 국제거래계의 변호사들이다.

국내법은 여기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고려되는 규범은 단지 국제법상의 일반규칙과 해당 BIT 또는 FTA 협정문뿐인데, 국제법에는 확립된 원칙이 없다는 게 일반원리이므로 세 명의 변호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체코의 노바TV 사건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체코가 투자자에게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런던 판정이 나오고 6개월 뒤 스톡홀름에서는 1억 7천만 불을 배상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이는 체코 1년 의료보험 예산에 해당한다. ISD로 물어야 할 배상금은 국채로 변상할 수 없으며 판정 즉시 현금으로만 갚아야 하는데 체코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징수하여 충당하였다. 만약 배상금을 제대로 물지 않으면 사설 투자평가기관의 국가신인도가 추락할 게 뻔하다.

중재 과정에서 변호사 셋이 고려하는 가치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이다.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서 벌어졌던 중재의 결정문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알려진 ISD는 90년대 후반부터 그 수가 폭증하고 있는데 정확히 몇 건이나 되는지 집계할 수가 없다. 중재 심판은 종국적이므로 차후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제소할 수도 없다.

ISD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간접 수용’이라는 개념도 매우 위험하다. ‘수용’은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취득하면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고, 몰수는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유화는 대규모 몰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간접 수용은 무엇인가? 국가가 직접적으로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아도 재산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 수용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개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거리에서 토스트 가게를 꾸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토스트를 많이 구입하여 장사가 잘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서 신호등을 없애고 지하도를 뚫어서 이용객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면 간접수용에 해당한다.

간접 수용을 참작하면 국가가 산업 정책을 펼칠 여지가 거의 없어진다. 국가가 전략 산업을 선정했다면 여기에 선택되지 않은 외국인 투자 기업이 제 자산을 침해받지 않을 리가 없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개방해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웃기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펼칠 필요도 없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한 번 펼쳐 보자. 자유무역을 하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어떻게 되는가. 비교 우위가 낮은 산업은 도태된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 정부는 한민족은 장보고의 후예니까 잘해낼 수 있다고 한다.

또 오늘날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던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는 추세인데, 미국 택배회사 UPS의 경우 캐나다 정부가 운영하다 민영화한 택배 회사가 예전에 국가 지위에서 누리던 설비 등을 갖고 경쟁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상태이다. 이 사건에서 캐나다 정부가 배상금을 물게 되면 앞으로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는 모두 철저히 시장의 논리에 따라 공급될 터이므로, 수지가 나지 않는 벽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없게 된다.

투자자가 이렇듯 어마하게 넓은 범위에 걸쳐 국가를 중재로 회부할 수 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권리를 지닌 투자자의 범위도 무지하게 넓다. 벡텔이라는 미국 회사가 볼리비아 어느 지역에 상수도 공급을 맡았는데 시장 논리대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1인당 한 달 평균 임금이 100불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수도 요금이 평균 30불이 나오게 됐다. 돈이 생기면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 물값을 내야 할지 고민한다는 농담이 생겼다. 사람들이 빗물을 받아 용수로 쓰기 시작하자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에게 이를 금지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항의하던 사람들을 진압하던 와중에 17명이 죽었다. 계엄이 선포되었는데도 소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볼리비아 정부는 벡텔을 추방했다. 벡텔은 ISD로 볼리비아 정부를 중재 판정소로 불러 내었다.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와 FTA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가 없지만 벨기에와 볼리비아 사이에는 BIT가 맺어져 있다. 벡텔은 벨기에에 유령 회사를 설립했다. 벨기에에서는 법인 설립 요건에 거의 제한이 없다. 그 유령회사가 벨기에 투자자의 이름으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받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협정문 어디에도 투자자의 개념에 최대 주주라는 말이 없다. 소액 주주는 물론 기업의 채권단까지 투자자에 해당한다.

정부 관료들이 ISD를 반드시 한미FTA에 포함하려는 의도는 아마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에 쐐기를 박아 다시는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데 있어 보인다. 투자자가 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금융허브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 같은데 국민경제 순환 구조가 붕괴한 상태에서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베네룩스 같은 모델 도입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대선 후보에 나선 사람들이 경제 성장률 7%를 언급한다. 작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4.9%였다. OECD 국가 중에 높은 편이다. 대기업은 이윤으로 투자와 고용을 하기는커녕 자사주 매각을 통해 소유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 경제와 사회 영역을 잇는 혈맥을 다시 세우려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한미FTA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이 비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민 가는 일에 대한 판단과 유사한데 다른 나라로 건너가서 일이 잘 풀릴지, 잘 안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그 불확실한 미래를 감싼 안개에 대한 이미지를 보고 결정을 내린다. 미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찬성 여론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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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의 마지막 말

피노체트가 죽었다. 내가 자주 들리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가 살해한 아옌데가 더 회자되고 있다. 칠레 전투를 시간 내어 꼭 봐야 할텐데.. 아옌데가 흉탄에 숨지기 전에 남긴 라디오 연설을 읽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촌스러운 전태일 대신 멋진 체를 존경하는 궁상과 같은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대면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이상을 공유한 자의 연대 의식에서 감정이 동요하였던 것이라면 좋겠다. 아래는 ‘밑에서 본 세상’에서 옮겨온 연설문 번역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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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11일은 민주적인 절차로 당선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아메리카합중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의 쿠데타로 밀려나 숨진 날입니다. 그가 이날 아침 마지막으로 한 라디오 연설문을 옮겨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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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확실히 이번이 제가 여러분들께 연설하는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공군이 마가야네스 라디오의 안테나들을 폭격했습니다. 제 말들은 쓰라림이 아니라 실망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자신들의 맹세를 배반한 이들에게는 도덕적 처벌이 있을 겁니다. 칠레의 군인들, 이름뿐인 총사령관들, 스스로를 해군 사령관이라고 칭한 메리노 장군, 그리고 바로 어제 정부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고 스스로를 (준군사 경찰) 카라비네로스의 총장으로 임명한 비열한 장군 멘도사씨. 이런 상황에서 저에게 남은 건 오직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사적 변천 과정에 처해서 저는 일생동안 인민들에게 충성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수많은 칠레인들의 양심에 뿌린 씨앗이 영원히 시들어버리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무력이 있고 우리를 지배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사회의 진행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인민들이 역사를 만듭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여러분이 언제나 보여줬던 충실함 그리고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것만 했으며 정의에 대한 위대한 갈망의 해석자에 불과한 이에게 주셨던 신임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 제가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이 마지막 순간, 저는 여러분이 교훈을 잘 활용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외국 자본, 제국주의가, 반동세력과 함께, 군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전통을 깨뜨리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사실에서 말입니다. 이 전통은 슈나이더 장군이 가르친 것이고 아라야 사령관이 재확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오늘날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 외국의 도움으로 권력을 다시 정복하려 하는 바로 그 사회 세력들의 희생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땅의 품위 있는 여성, 우리를 믿는 농부,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염려를 아는 어머니, 바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저는 칠레의 전문직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이점을 옹호하는 직능 결사체들, 최고급 결사체들이 지지하는 반란에 맞서 계속 애써온 애국적 전문직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젊은이들, 노래 부르고 우리에게 자신들의 기쁨과 투쟁 정신을 보여준 그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칠레의 남성, 노동자, 농부, 지식인, 이미 이 나라에 파시즘이 나타나 여러 시간 지속되고 있는 탓에 학대당하게 될 그들에게 말합니다. 행동할 의무가 있는 이들의 침묵 속에서 테러 공격, 다리 폭파, 철로 절단, 기름과 가스 수송관 파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심이 굳습니다. 역사가 그들을 심판할 겁니다.

확실히, 마가야네스 라디오는 침묵할 것이고, 제 목소리를 전하는 차분한 금속 기계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이건 대단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겁니다. 저는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제 기억이, 조국에 충성한 위엄 있는 사람의 기억이 될 겁니다.

인민들은 스스로 방어해야 합니다만, 제 스스로를 희생해서는 안됩니다. 인민은 자신이 파괴되도록, 총알 세례를 받도록 놔둬서도 안됩니다만, 인민이 굴욕을 당할 수도 없습니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반역이 지배하려고 하는 이 어둡고 모진 순간을 극복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이것이 적어도 중죄, 비겁, 반역을 처벌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칠레 산티아고
1973년 9월11일.

http://blog.jinbo.net/marishin/?cid=7&pid=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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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와 06년 평택 : B급 좌파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 이 글은 2006년 5월 15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김규항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근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봉건제의 예속을 끊어 농민을 노동자로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자유가 필요했다. 프랑스 혁명은 부유할 수 있는 자유와 더불어 가난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주었다. 비슷한 논리로, 70년대 신자유주의가 대두할 때 한국은 강력한 군사 파시즘 국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을 개방시키려면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 잡을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서 87년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 낸 결과는 신자유주의화다.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폄훼하려는 뜻이 아니다. 문민정부가 세계화는 좋은 것이라 부르짖었을 때 경계했어야 하는데, 진보 진영은 동구권 붕괴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 신자유주의 체제가 완성되었다. 학자에 따라 아직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사회가 되었다. 이는 고단하고 황폐해져 가는 우리 사회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월드컵이나 신형 핸드폰, 자동차 같은 것들이다.

2004년의 탄핵은 이러한 상황을 은폐하는 대형 퍼포먼스였다. 한국 사람들은 군사 파시즘에 대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어서,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구도를 재현하여 ‘그들’이 돌아온다고 선동하면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다. 북한이 이제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듯이 수구 세력이 역사를 퇴행시킬 능력은 없다. 지금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세력은 개혁 우파다. 조갑제와 지만원의 선동은 미학적으로 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극우 세력은 이제 사회의 한 구획으로 모이고 있기 때문에 부각되고 있을 뿐이다. 선풍기의 전원을 껐을 때 날개가 당장에 멈춰 서지는 않는다.

다만 월드컵과 황우석처럼 국가주의가 판치는 현상은 아직 남아 있다. 만약 유럽에서 한국처럼 TV 광고에 국기가 휘날리며 애국심에 기대어 상품을 판다면 굉장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16세기에 한 스페인 선교사는 인디언들도 유럽인과 똑같은 사람이며 오래 전부터 그들의 방식으로 오히려 백인들보다 하느님과 더 잘 대화해 왔다고 주장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인디언을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식민지 개척의 정당성을 잃기 때문에 그 선교사는 진실 따위 때문에 국익을 저버린 놈이 되었다.

지금 평택은 광주와 같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행되지 않았더라면 공수부대가 투입되었을 것이다. 평택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동북아질서 재편이다.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전력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도록 기지를 확장 이전하면서 미군의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환되고 있다. 미국은 초국적 기업의 본거지이고, 미국의 이러한 전략 수정은 신자유주의의 일환이다.

80년 광주 항쟁의 경험을 통해 진보 운동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그전까지 진보 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은 국가에 노출되면 무조건 간첩으로 몰렸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 자신도 스스로 반공주의자라고 실제로 믿었다. 80년 이전 운동의 목표는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계엄군이 광주를 짓밟는 동안 미국의 항공모함이 한국 근처로 온다는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미국이 시민들을 도우러 온다고 착각했다. 미국은 한국의 신군부를 안정화시키려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몇 달 사이에 운동은 더 급진적으로 변하였다. 80년에서 87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운동의 목표는 민주화가 아니라 혁명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순수한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말하였으나 실제 목표는 체제 전복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다시 부활한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생각이 깊고 진지한 사람은 모두 사회주의자였다. 전쟁이 끝나고 문인들은 술판에서 쭉정이만 남고 알맹이는 없어졌다며 자조했다 한다. 그 후 광주 항쟁 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는데, 80년대 중반에는 레닌 · 스탈린주의자까지 출현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사람들은 체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돈이 있으면 사랑과 존경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돈 없고 정직한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수구 세력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기만적인 말들을 하고 있다. 정권은 극단적 우파에서 보기 좋은 우파로 넘어 갔을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는 얘기를 한다. 그들이 떠드는 내용은 고작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체제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꼭두각시 노릇이다.

Q. 남미 정치와 유럽의 사민주의에 대하여.
A. 지금 남미는 신자유주의를 거스르는 아름다운 모델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전환시켜야 한다. 사민주의는 절충된 상태다. 혁명은 안 할 테니까 다른 것들을 좀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지구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잘 사는 사회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사회의 마지막이라고 본다면 문제가 있다. 거기에도 신분과 소외와 차별과 억압은 존재한다.

Q.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하여.
허접한 공화정보다 유능한 왕정이, 위선적 여성주의자보다 따뜻한 마초가 인간을 단기적으로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수는 있듯이 자본주의에도 장점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이고 경쟁에서 모든 사람이 승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Q. 평택의 공권력에 대항하는 폭력에 대하여.
A. 세상에 폭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도 지금 어쩔 수 없이 대항 폭력을 쓴다고 생각한다. 부시도 미국의 전쟁이 테러에 대항하는 폭력이라고 여긴다. 부시와 라덴은 모두 똑같이 폭력을 쓰는 인간이라고 등치시키는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진정성이 달라진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처럼 폭력의 현장에서 피해를 겪는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존중하겠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공부방에 앉아 책이나 뒤적거리면서 하는 말은 현장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Q.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여.
A. 우선 우리는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선별된 정보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북한 인민들이 자기네 정치 지도부에 대한 윤리적 신뢰는 매우 높다. 그것을 세뇌라고 하기도 하는데 요즘처럼 외부인이 자주 들락거리는데도 반세기 동안 세뇌당하고만 있다고 여기기는 힘들다. 북한을 딱하게 여기기 전에 우리 사회를 보자.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되었고 점심을 못 먹는 아이들이 50만 명 존재한다. 남한에 자유권이 더 잘 보장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에는 사회권이 더 잘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북한에서 양육은 국가가 모두 책임진다. 북한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농담조로)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더니 “당신 PD인 줄 알았더니 NL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Q. 종파주의에 대하여.
A. 홍세화씨는 자신이 사민주의자라고 하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공산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사회주의자도 전술적인 선택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신념과 원칙이다. 한국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좌파들끼리라도 똘똘 뭉쳐야 된다는 주장 속에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진정한 연대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전술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사민주의인 사람과 사회주의자로서 사민주의적 선택을 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종파주의란 자기 조직 지분을 위해 혁명을 거스르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서로 다른 종류의 생각은 만 가지가 되더라도 좋다고 본다.

Q. 한국 기독교에 대하여.
A. 학생들에게 받는 심각한 질문 중에 교회 문제가 가장 많다. 한국 교회는 상점이다. 작은 교회는 가게고 큰 교회는 기업이다. 그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생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야훼가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예수가 죽는 순간 지성소 휘장이 찢어졌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직접 소통하게 되었다는 상징이었다. 목사는 신부처럼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성직이 아니라 직업에 지나지 않는데 한국 목사들은 마치 자신이 그 사이의 중개자처럼 행세한다. 교회개혁운동은 한국 교회를 교회라는 전제 아래 펼쳐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나는 중2때 부모 따라 교회에 나갔는데 늘 교회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러다 한신대에 입학해서 예수가 얼마나 역동적인지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80년대 전의 운동은 진보적 기독교 운동이 주도해 왔고, 그 분들이 예수처럼 싸우다 죽자고 말하니 어떻게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나는 맑스보다 예수가 더 큰 충격이었다.

Q.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생각을 감염시킬 수 있을까.
A. 교회 문제 다음으로 많은 학생들의 심각한 질문이다. 내가 낙관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이 세상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보여주려는 데 있지 않고 이 세상이 얼마나 은폐되어 있는지 말하려는 데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는 욕망의 부질없는 총결정체는 아이 교육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아이들을 상품으로 키우고 있다. 내 주변의 진보연하는 사람도 늦어도 아이가 6학년 정도 되면 변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가 주변 환경 때문에 변한다. 지금 진보의 흐름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운동은 이미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양쪽 사이에 있는 부유층과 회의층을 끌어들여야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얼개를 잡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애정을 갖고 장기적으로 천천히 감염시키자.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이런 얘기로 열을 올리는 방식은 별로 효과가 없다. 살다 보면 삶에서 진지한 국면이 찾아오는 때가 있다. 자본주의는 결코 이성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인간의 말초 신경을 통해 세련되게 침투하는데, 구호나 선전으로 대중이 선동되지 않는다. 결국 누가 더 정말로 행복하게 사는지 보여주는 삶의 대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학 생활 수준에서 드러나기는 힘들다. 학생운동은 망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학생운동은 오랫동안 진보의 우물로 특별한 성격을 지녀왔다. 미국과 일본의 학생운동도 우리처럼 급진적으로 되지는 않았다. 학생운동이 쇠락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잘되면 좋다. 솔직히 대학생들은 지금 생각을 졸업해서 견지하기나 했으면 좋겠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학생 때 100명이었다가 세월이 흐른 뒤 0명인 것보다 2~3명이 남아 있는 게 발전 아니겠는가.

Q.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A. 가난에는 자발적 가난과 구조적 가난이 있다. 자발적 가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다. 하지만 그것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에게도 상층과 중층 계급의 지원자가 있었다. ‘고래가 그랬어’도 망할 뻔 했는데 건전한 부자 1~2명의 도움으로 회생했는데, 그 후로 생각이 조금 변했다.

Q.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권하고 싶은 책을 추천해 달라.
A. 김수영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한국 지식인 가운데 자기와 분리된 사회의 얘기를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 자기 일상을 이야기한 최초의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신동엽과, 요즘의 글을 읽지는 않지만 김지하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가복음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우리들의 하느님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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