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사명

국회가 만든 법률의 효력을 헌법재판소가 상실시키는 근거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므로,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그 효력을 제거한다. 국회의 입법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로 법률의 효력을 잃게 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부나 범위에 다툼이 있을 때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헌법소송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2조 제1호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 국회, 정부, 법원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을 언급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명시된 기관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국회의 내부기관인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사이의 권한쟁의심판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노동법날치기 사건 때부터 견해를 변경하여 국회의장을 상대로 국회의원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사이에서 문제 되는 가장 중요한 권한은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다. 국회의장은 본회의에서 법안 심의와 표결이 끝나고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는 경우 가결을 선포하는데, 국회법상 규정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결선포한다면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된다. 이때 국회의원은 국회의장의 법안 가결선포행위가 자신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또 자신의 권한을 침해한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을 부정하여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장의 가결선포행위가 무효라고 판단한다면 그에 의해 당해 법률의 효력도 인정될 수 없겠지만, 현행 헌법재판소법상 헌재가 청구인의 권한이 침해되었는지 확인하는 것과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한 피청구인의 행위를 효력을 없애는 것은 별개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1항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한다.

제2항 제1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

신문법안과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행위가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사실은 확인하지만, 가결선포행위가 무효라고 확인하지 않은 법적 근거가 바로 이 조항이다. 신문법안에 대한 판단을 보면, 권한침해는 확인하면서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지 않은 재판관은 네 명이다.

김종대는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을 때 그 침해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당해 법률을 폐기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권한쟁의심판의 심판대상은 ‘법률제정행위’이지 ‘법률’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어 권한쟁의심판에서는 4~5인의 찬성만으로도 법안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로 인정할 수 있는데, 이는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위헌결정의 정족수를 6인으로 규정한 헌법 제113조 제1항에 어긋나므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에 대한 사후의 조치는 오직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고 하였다.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6인 미만의 재판관의 찬성으로 법률의 효력을 부정할 수도 있는 문제점을 짚은 논문이 있었던 만큼(차진아, 권한쟁의심판과 위헌법률심판의 충돌에 관한 고찰, 헌법학연구 제15권 제1호, 2009년 3월) 가볍게 무시할 견해는 아니다.

이강국과 이공현은 헌법재판소법 제66조의 해석을 꾀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제66조 제1항의 권한의 존부나 범위 판단과 제66조 제2항의 권한 침해 원인의 무효 확인은 다른 문제이므로, 권한침해를 확인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권한을 침해한 원인행위의 무효를 확인할 필요는 없으며, 헌법재판소가 직접 다른 국가기관의 행위의 효력을 무위로 돌리려면 “권한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법문상 이렇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허튼소리는 아니다. 더욱이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과 같은 규정이 없어서, 특정 국가기관의 처분이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확인하는 결정만 내리지,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특정 국가기관의 처분에 효력이 없다고 결정하지 못한다. 연방헌법재판소가 권한 침해를 확인해 주었다면, 이를 바탕으로 국가기관끼리 알아서 해결하게 된다.

이동흡은 일부 국회의원의 권한이 침해되었더라도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경우”에만 그 법률안의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로 볼 수 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국회의원들의 본회의 개의 저지 및 의사방해행위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의사진행이 위법하게 되었고 청구인들의 권한 침해가 표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가결선포행위의 하자는 경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보았다.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 상태를 제거할 임무를 국회에 맡긴 3인의 기각 의견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다른 국가기관보다 상위에 놓인 기관이 아니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벗어나 다른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위헌법률심사에서 위헌 결정을 하더라도 새로운 법률의 내용을 정할 수는 없다. 또 국가원수의 통치행위와 국회의 자율권에 대해서는 사법심사를 회피하여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고자 한다. 사법부가 다른 국가기관의 행위를 무효로 만든다거나 하여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면, 특정 당파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게다가 사법적극주의는 반작용을 부른다. 뉴딜법안에 잇달아 미국연방대법원이 위헌선언을 내리자 루스벨트가 연방대법관 정원을 늘리려 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집권기에 헌법재판소가 중요한 정책의 추진 여부를 결정짓자, 전효숙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하려던 대통령의 시도를 야당에서 좌절시켰던 경우처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둘러싼 정치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직업 법관이 결정하게 되면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문제는 이번 결정에서 나타난 헌법재판소의 중립성이, 가장된 당파성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이었던 김승대는 <헌법 관습의 법규범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헌법재판소가 발간하는 헌법논총에 썼는데, ‘관습헌법의 변경은 성문헌법 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며 위헌결정문에서 제시된 법리의 자세한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김기창, 성문헌법과 ‘관습헌법’, 공법연구 제33집 제3호, 2005년 5월) 그 논거란 드골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프랑스 학자인 카피탕이 성문헌법이 불문의 헌법관습을 통해 변경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승대는 카피탕의 이러한 주장에서 관습헌법에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명제를 도출하여, 관습헌법 변경에도 성문헌법 개정절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현재 프랑스 헌법학계에서는 사장된 소수설을 거꾸로 해석한, 세계에서 누구도 주장한 적 없는 조악한 이론을 창안하여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입법부가 승인한 정책의 근거법을 엎어버린 꼴이다.

어떤 때에는 무리한 법리를 창조하면서까지 입법부의 정치적 결단을 무력하게 만들면서, 또 어떤 때에는 뒷짐만 지는 태도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고 있다기보다 당파성을 숨기려는 속셈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만 유효한 입법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확립할 호기였으며,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더라도 그 당파성을 의심받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이 헌법재판소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나, 사람들은 지금 헌법재판소가 과연 필요한 기관인지 의문을 품는다. 권한침해행위가 무효라고 확인하지 않으면, 권한침해확인은 실효성이 없다. 예링은 “강제력이 없는 법은 타지 않는 불이요, 비치지 않는 등불”이라고 말하였는데, 2009년 10월 29일 한국 국민은 타지 않는 불과 비치지 않는 등불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셈이다. 헌법을 ‘살아 있는 법’으로 만든 제9차 개정헌법 최고의 성과물인 헌법재판제도가 무용하게 여겨지는 비극은,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청구를 인용한 재판관들이 비분강개하게 표현하였듯 “모든 국가작용이 합헌적으로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할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한 재판관들이 초래하였다.

이번 결정은 1997년에 내려졌던 노동법날치기 통과 때 제기되었던 권한쟁의심판의 결론과 다르지 않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견해이며 당시 개정노동법에 도입되었던 정리해고제처럼 한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이었고 그럴 수록 신중한 합의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십 여년 전처럼 권한은 침해되었으나 권한을 침해한 행위의 무효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되풀이하여 안타깝다. 헌법재판소가 중립을 지키는 까닭은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는데, 실효성이 없는 공정성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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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 Empti

1. Actio의 의미

실체법과 절차법이 분화된 근대 시민법에서는 실체법에서 구체적으로 개별 권리를 규정하고, 분쟁이 생기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訴權으로 절차법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여 각자의 권리를 확인받는다. 로마법에서는 私權과 訴權이 분리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법률관계마다 개별적인 actio가 존재했다. 로마 법학자는 어떤 사건이 있으면 오늘날처럼 실체법상 권리 개념으로부터 접근하지 않고, 어떠한 actio가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즉, 로마인들은 권리를 소송에서 관철할 수 있는 법적 보호를 받는 지위나 자격으로 보았고, ‘누구에게 actio가 인정된다’는 표현은 ‘누구에게 권리가 있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로마법을 訴權法體系라고 부르는 것이다.

2. 賣買(emptio venditio)와 actio empti

로마법상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은 소유권이전의무가 아니라 목적물의 완전한 점유(vacua possessio)를 매수인에게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였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매매계약이 생겨난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로마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인 토지와 노예 및 가축은 手中物(res mancipi)로서 市民法(ius civile)의 엄격한 요식행위인 掌握行爲(mancipatio)나 法廷讓渡(in iure cessio)로만 취득할 수 있었다. 시민법은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므로 외국인은 이러한 시민법상 물권양도행위를 할 수 없어서 로마 시민에게 목적물의 소유권을 이전시킬 수 없었고, 그 결과로 로마인과 외국인 사이에 萬民法(ius gentium)상 매매제도가 발달하였다.
手中勿을 단순히 引渡(traditio)한 경우 목적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매수인은 使用取得(usucapio)으로 소유권을 취득하여야 했고, 매도인은 매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때까지 담보책임을 부담했다. 외국인이 로마인에게 手中物을 매도할 때는 이렇게 처리되었으나, 使用取得도 로마인에게만 적용되는 제도였기 때문에 로마인이 외국인에게 手中物을 매도할 때에는 시민법이 아니라 名譽法(ius honorarium)에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명예법은 政務官(magisratus)이 직권행사를 통해 발달시킨 일련의 법제도로서 시대에 맞지 않는 시민법을 보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手中物과 달리 非手中物(res nec mancipi)은 매도인의 단순한 인도로써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살펴보았듯이 로마법에는 일반적 소권(actio generalis)이 없었기 때문에, 계약의 이행을 청구하기 위해서도 개별적인 actio가 필요했다. 매매 계약을 맺은 당사자 사이에서 매수인은 actio empti로, 매도인은 actio venditi로 상대방에게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쌍무계약의 당사자 간에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을 고유소송이라고 불렀다. 매매의 주된 효력은 매도인의 점유이전의무와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였으므로, 매수인은 actio empti로 목적물을 점유할 권리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賣渡人의 擔保責任과 actio empti

(1)追奪擔保責任
위에서 매도인은 매수인이 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때까지 담보책임을 부담한다고 기술하였는데, 이러한 담보책임은 애당초 매매계약의 효력이 아니었다.
장악행위로 목적물의 소유권이 이전된 뒤 목적물에 爭訟이 발생하면 매도인은 소송에 참가하여 매수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이를 actio auctoritatis라 했는데, 매매법상의 法定責任이 아니라 12表法에 기초한 소권이었다. actio auctoritatis는 장악행위가 없었다면 적용될 수가 없으므로 매수인은 追奪(evictio)에 대비하여 로마법에서 널리 쓰인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言語契約인 問答契約(stipulatio)으로 매도인에게 추탈담보책임을 보장받았다. 거래가 장악행위로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추탈담보계약도 맺지 않았다면 매도인은 아무런 책임을 부담하지 않았다.
매수인이 목적물을 제3자에게 빼앗겼는데 담보계약이 없었다고 매도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면 형평에 어긋나므로, 적어도 古典期부터 이 경우에도 actio empti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유스티니아누스帝 시대부터는 추탈담보책임이 매매계약의 효력으로 인정되어 매도인의 책임으로 일반화되었다. 이처럼 actio empti는 추탈담보책임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瑕疵擔保責任
物件의 瑕疵擔保責任도 처음부터 매매의 효력으로 인정된 책임이 아니었다. 양도인이 하자담보에 관하여 言明(dictum in mancipatio)한 경우에는 하자담보책임을 졌고, 古法時代부터 추탈담보책임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사이에 문답계약으로 매도인이 물건의 하자에 대하여도 담보책임을 부담하는 거래관행이 존재했다. 이러한 담보책임약정이 없으면 매수인은 보호될 수 없었다.
共和政末이 되면 물건의 하자담보책임에 있어서도 사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로마시내에서는 高等按擦官(aediles curules)이 노예와 가축의 시장거래에 대하여 경찰감독권과 재판권을 관장하였는데, 보통 외국인이 노예를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들의 평판이 좋지 않아서 매수인에게 큰 위험이 따랐고, 매수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按擦官告示(edictum aedilium circulium)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노예와 가축의 매도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목적물의 숨은 하자를 매수인에게 告知하여야 했고, 고지되지 않은 하자에 대해서는 매매 당시에 매도인이 이를 알지 못했어도 책임을 져야 했다. 이 책임의 효과로 매수인은 해제권(actio redhibitoria)과 대금감액청구권(actio quanti minoris)를 행사할 수 있었고, 유스티니아누스帝는 안찰관고시의 적용범위를 모든 물건의 매매에 확장했다.
또 이 시기에 이르면 매도인이 하자가 없다고 보증하였거나, 명시적인 언명이 있었거나, 악의로 하자를 은폐한 경우 물건의 하자 때문에 매수인에게 발생한 손해를 actio empti로 배상받을 수 있었다. 안찰관의 담보소송과는 달리 매도인에게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했으므로 행사요건이 엄격했다. 그러나 actio empti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고 청구기간이 훨씬 길어 안찰관소권보다 매수인에게 유리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帝는 시민법과 명예법을 통합하면서 안찰관의 고시규정을 Digesta에 채용했는데, 매도인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원고가 입은 실손해(quod actoris interest)를 actio empti로 배상받을 수 있고, 계약해제권도 actio empti에 편입되었다. 즉, 매매의 효력으로 하자담보책임이 당연히 인정되어 손해배상청구권, 해제권, 대금감액청구권이 하나의 법리로 확립된 것이다.
이처럼 actio empti와 함께 발달한 담보책임제도의 연혁을 살펴보면, 담보책임을 채무불이행책임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법정책임으로 창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담보책임의 본질이 채무불이행책임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4. 原始無效인 賣買와 actio empti

근대법과 동일하게 로마법에서도 계약의 목적물이 자연계에 實在(in rerum natura)하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였다. 로마법에서는 현존물이 아니라 장래에 취득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에 대한 매매(emptio rei speratae)도 가능하였고, 심지어 매도인이 물건을 취득하지 못해도 매수인이 대금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매매(emptio spei)도 할 수 있었으나, 실재하지 않는 물건에 대한 매매는 성립되지 않았다.
매매가 무효라면 actio empti를 논할 여지도 없는데, Sabinus派는 체약자 간에 설정된 일정한 관계에 신뢰보호원칙을 적용하여 actio empti를 인정하였다. 로마에서는 상속재산(hereditus)도 매매의 대상이었는데, 상속재산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actio empti로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D.18.4.8). Procules派는 이 경우 非債辨濟의 不當利得訴權(condictio indebiti)을 인정하였을 뿐이다(D.18.4.7). 이 학파 대립은 Jhering이 계약체결상의 과실(culpa in contrahendo) 이론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물건처럼 神法상의 物件(res divini iuris)이나 公有物(res publicae) 같은 非融通物에 대한 매매도 무효였는데, 유스티니아누스帝法에서는 매수인이 목적물을 융통물로 잘못 알고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actio empti가 인정되었다. 이처럼 actio empti는 시대가 흐르면서 인정되는 범위가 점차 확장되었고, 매매에서 매수인을 보호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玄勝鍾·曺圭昌, 로마法, 1996, 法文社.
최병조, 로마법강의, 1999, 博英社.
胡文赫, 債權과 請求權의 관계, 民法註解Ⅷ,1995, 博英社.
南孝淳, 擔保責任, 民法註解XⅣ, 1997, 博英社.
郭潤直, 債權各論, 2003, 博英社.
梁彰洙, 原始的 不能論, 民法硏究 第3券, 1995, 博英社.
http://lawlec.korea.ac.kr/law/?p=38, 최근확인일 200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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