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에 바치는 용비어천가 :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고대-중세-근대로 이어지는 도식적인 시대 구분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다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자유주의 이후’를 읽고 ‘근대’라는 개념이 다른 시기보다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품고 있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편입되어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유럽이 만들어 낸 근대 세계라는 현상을 목도한 후, 작금의 현실을 분석하려면 근대가 무엇인지 낱낱이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반도에 근대가 수입된 때는 일제 강점기였고 한국인이 쓰고 있는 두 글자로 된 사회과학 용어는 죄다 일본 학자들이 번역해 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과연 일본은 근대를 어떻게 맞이하였는지 궁금해졌다. 본격적으로 메이지 시대를 다룬 책을 잡기 전에, 한국에도 유명세를 탄 일본 전국 시대 역사 소설들을 읽어보면 일본 역사에 한결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에 사로잡혔다. 센코쿠 시대라는 이 치열한 분열의 시기를 겪고 난 뒤 비로소 일본 열도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근대 민족 국가 이전의 민족체가 동질하게 형성되기 시작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번역된 센코쿠 시대 역사 소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분량이나 지명도에서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단연 으뜸이었다. 32권에 걸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생소한 이름이 보이면 곧장 인물 소개 페이지를 뒤적거리게 되는데, 어찌나 비슷한 이름이 많던지 히라가나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내가 노부(信), 마사(政), 토라(虎), 시게(重), 나가(長) 같은 자주 쓰이는 이름 글자들에 친숙해져 버렸다.

어찌 어찌하여 이 기나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무엇보다 진하게 남은 느낌은 역시 세상에는 인간의 능력만으로 해 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일세를 풍미했던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모두 오다 노부나가와의 중요한 대결이 임박해 오는 때에 명을 달리 했다. 노부나가 역시 당시 일본의 중심지였던 교토 인근을 제압하고 동쪽에서 강대했던 다케다 가문을 쓰러트린 뒤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명하여 서쪽의 실력자 모리 가문을 압박해 가던 중 혼노지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역으로 목숨을 잃었다. 영걸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만이 아니다. 개인의 의지로 극복되지 않는 영역을 한자 문화권에서는 天命이나 運이라 칭하고, 마키아벨리는 fortuna라고 말했다. 아무리 탁월한 역량을 지닌 이들조차 운명의 여신의 가호 없이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할진대, 한낱 평범한 인간은 스스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작품 내내 자주 등장하는 진실을 불식하는 소문들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작품 속의 세간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보여주며 실제로는 이 인물들은 이런 까닭으로 그러한 행위를 했을 것이라며 소문과는 다른 진실을 말한다. 허나 이렇게 작가의 색다른 해석이 개입된 부분은 주로 인물들의 내증이기 때문에 실제를 확인할 길은 전혀 없다. 한국어 번역 출판사에서 내놓은 평 중 “독자의 의표를 찌르며 자유자재하는 광활한 상상력이 종횡무진, 시종일관 관통하고 있는” 부분이 대체로 여기에 해당된다. 예컨대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에게 할복을 명했을 때, 흔히들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에게 철저히 굽히기 위해 후계자의 죽음마저 용납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해석에 따르면 노부야스는 다케다 가문과 내통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야스가 천하의 안정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자식을 처단한 게 된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그간 정설로 여겨졌던 역사적 해석들을 뒤집는다. 물론 한국 독자들은 일본 센코쿠 시대를 자세히 아는 경우가 드무니 이러한 전복의 쾌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라쇼몬’에서처럼 복수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에서도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잣거리의 뜬소문에 일말의 진실이 존재하듯, 거물들의 밀담 속에도 역사의 비밀은 숨겨져 있을 터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부분도 많았다. 우선 당시에 과연 근왕 사상이 존재하였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노부나가가 교토에 입성하면서 勤王을 기치로 내걸었다고 묘사를 하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서 일본 열도를 통일했다면 세계 최초로 절대왕정을 구축했을 것만 같은 그 노부나가가 근왕을 외쳤다니! 조일 7년 전쟁을 매듭지으려고 명이 일본에 보낸 칙서에서는 히데요시를 일본의 왕으로 임명하려 한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히데요시가 명나라 사신에게 대노했다고 표현했다. 일본에는 엄연히 천황께서 따로 존재하는데 히데요시를 왕으로 간주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충이라면서. 글쎄,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천황을 신주 모시듯 소중히 여기게 된 때는 메이지 시대부터 아니었던가. 그 당시 일본을 방문한 포르투갈 등 서구인의 기록에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를 황제로 묘사해 놓았다. 당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최고 권력자들이 이들이었다면,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쳤던 후세의 일본제국 종군기자 출신 소설가가 센코쿠 시대에 유명무실했던 천황의 존재를 내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다음으로 의아한 부분은 16C말과 17C초에 이르는 시기에 등장한 탈아입구의 세계관이다. 그 시기의 오사카 상인들이 동남아시아와 남중국을 오가며 국제 무역에 종사했다는 史實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일본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진출하려는 이유가 상인의 본업인 이윤 추구가 아니라 서구 열강에 뒤쳐지면 그들에게 침식당한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는 해석은 지나치게 때 이른 평가다. 당시 유럽인들의 전투 수행 능력은 아직 원양 항해 끝에 도달한 지역을 점령하여 통치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강력하지 못했다. 화기 중에서도 대포는 아직 동서양의 기술 차이가 크지 않았고, 유럽에서 개발된 총포도 심지에 불을 붙여 발포하던 화승총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머스켓으로 이제 막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전투가 그칠 날이 없던 센코쿠 시대 일본에 역수입된 총포는 수십 년 사이에 엄청난 양이 생산되어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단행하던 시점에 일본군이 보유한 총포 수는 당시 세계 제일이었다.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 동안 정복할 수 있었던 영역은 강력한 전제 왕조의 지배가 미치지 못했던 자투리땅에 한정되었다. 그것도 일정 면적을 영토의 형태로 차지했다기보다는 주요 거점을 점찍듯 확보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무굴 제국과 청 제국이 건재했던 시기에 유럽인들은 감히 그 거대한 제국들을 건드려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청나라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려면 1840년의 아편 전쟁을 기다려야 했고, 무굴 제국이 멸망한 때는 세포이 항쟁이 벌어졌던 1857년 이후였다. 유럽인이 세계의 바다를 뒤늦게 헤쳐 다니기 시작한 때가 16세기부터라고는 하지만, 19세기 전까지 유럽 각국은 자기네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데 몰두해 있었고, 그 와중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군사 기술이 유럽 내부 평화의 세기인 19세기를 맞이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향한 치명적인 흉기가 된 것이다. 19세기 이전에 유럽인의 손에 멸망한 커다란 제국은 중남미의 아즈텍과 잉카 문명인데, 이들 아메리카 선주민은 유럽인이 바다 건너 묻혀 온 천연두균 등 이제껏 겪어 본 적 없는 세균에 의해 전염병이 퍼져 인구가 급감한 탓에 지나치게 손쉽게 제압당하였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포르투갈, 에스파냐의 남만인과 잉글랜드, 네덜란드의 홍모인 세력이 종교 전파를 앞세워 상륙한 뒤 교역의 물꼬를 트고 종국에는 무력으로 전아시아를 제압하리라 예견하는, 200년을 앞서간 일본 선각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때까지 지적했던 모든 지점은 결국 한 곳으로 모여 든다.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이에야스에 대한 찬미다. 센코쿠 시대를 평정한 세 영웅,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와 이에야스. 노부나가는 타고난 천재고, 히데요시만큼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덕분에 평범한 샐러리맨은 인내의 대가 이에야스를 모범적인 역할 모델로 삼게 된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기업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중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풍토와 묘하게 맞물린다. 이 평범한 영웅 이에야스를 변호하려고 작가는 3부 전체를 할애하여 이에야스 최대의 오점인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킨 경위를 서술하고 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끝까지 살려주려고 갖은 노력을 했으며 그 구원의 손길을 번번이 뿌리친 쪽은 명민하지 못했던 히데요리와 그 측근들이었다고 묘사하며, 오사카 전투 뒤에 히데요리를 죽인 것은 이에야스의 뜻이 아니라 가신들의 독단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야마오카씨는 단지 이에야스를 완벽한 인간상으로 그리는 수준을 뛰어 넘어 메이지 시대의 理想을 에도 막부의 창시자에게 투영한다. 야마오카의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따라 근왕 정신에 투철한 인물이며, 미래에 아시아로 침투할 유럽 세력의 준동을 예견하고 서세동점에 맞서 일본인의 해외 진출을 암암리에 장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서 에도 막부를 천황을 무시하고 정권을 쥐었던 무뢰한으로 파악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작가가 그런 평가를 극복하려고 이 소설을 썼다는 측면이 크다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제목 앞에 ‘유신지사’라는 넉 자를 덧붙여 ‘유신지사 도쿠가와 이에야스’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전쟁이 끝난 뒤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에서 쓴 이상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이 메이지 시대의 이상으로 읽히는 것은 내가 지나치게 비뚤어진 탓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메이지 시대의 이상을 이토록 내면 깊숙이 간직한 작가는 일본 제국의 침략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된다.

야마오카 소하치는 메이지 시대를 연 일등 공신 사카모토 료마에 대해서도 한 편의 소설을 썼다. 도쿠가와 막부는 어떤 계기로 쇄국 정책을 펼치게 되었으며, 그 정책에 대해 작가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 것인가. 창시자는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후계자들이 어리석었다고 적어 내려 갈 것인가. 자못 흥미가 돋는 내용이지만, 언제 다시 이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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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놀이와 귀족 정신

‘로마인 이야기’로 매년 서점에 이름을 띄우는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에 등장한 인물을 다루는 솜씨가 좋다. 그녀의 처녀작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여인 넷의 인생을 소재로 한 ‘르네상스의 여인들’이었고, ‘신의 대리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등 대다수의 저작이 개개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탁월한 필력은 날로 예리해져 ‘로마인 이야기’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할애한 두 권을 읽으면, 어떤 사람도 카이사르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얼핏 보면 시오노씨의 글에는 신문화사의 대표적 성과물인 ‘고양이 대학살’이나 ‘마르틴 게르의 귀향’과 비슷한 분위기가 감돈다. 다만 그녀가 다루는 인물은 주로 상류 계급에 국한된다. 어떤 작품에서는 민중을 등장시키려 했으나, 자료가 부족하여 포기했다 한다. 어떤 인물을 세세히 묘사하려면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 피지배계급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 오늘날까지 보존되는 일은 드물다.

이렇듯 시오노씨는 역사 서술에 있어 세부를 철저하게 묘사하여 시대의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을 주로 택한다. 각론을 모으다 보면 자연스레 총론을 파악하게 된다는 지론이다. 한국에서 출간되는 역사책에는 “한 권으로 읽는”, “하룻밤 사이에 읽는”, “무엇의 몇 장면” 따위의 문구가 들어간 제목이 유독 많다. 이런 얄팍한 요약서에 담긴 내용은 역사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보다 별로 깊지 못하다. 그렇다고 역사학자들의 학술 논문을 대중이 읽기란 힘들다. 대중 역사서는 지나치게 요점만 정리된 총론이고, 학자들의 저술은 부담스럽게 깊은 각론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은 바로 이런 전문 학술 서적과 대중 교양 서적의 간극을 파고들어 대성공했다. 일본에도 대형 서점에 그녀의 작품을 따로 배치해 둔 코너가 있을 정도라니,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서는 전후에 시바 료타료, 야마오카 소하치 등 우익 작가의 역사 소설이 큰 인기를 얻어 왔는데, 역사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드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글은 역사소설과 역사학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을 타며, 독서 대중의 목마른 지적 갈증을 해소해 준다.

학계에서는 절대로 탄생할 수 없을 이런 글들을 낳을 수 있었던 까닭은 역시 저자가 학자가 아닌 덕분이다. 그녀는 역사는 오락이라는 대담한 신조를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흥미 욕구에 충실한 글을 쓰는데 꺼릴 게 없다.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 때에 전거가 있는 부분은 활용하고, 없는 부분에서는 거침없이 자신의 상상을 펼쳐낸다. 허나 작가는 이렇게 파격적인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서술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사료 습득에 매우 치열하다. 권마다 말미에 붙어 있는 참고 문헌 목록에는 이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여기에다 유럽 곳곳을 두루 여행한 견문이 섞여서, 아마추어라고 쉬이 무시 못 할 저술이 나온다. 학자들의 기존 연구는 거의 참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도전적인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학문 연구 방법은 아무래도 자유로운 사고를 제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인물 열전만 쓴 것은 아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 ‘로마인 이야기’는 베네치아와 로마 시대의 통사다. 그녀가 베네치아와 로마의 역사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갖는 부분은, 베네치아인과 로마인들이 융성하고 쇠락한 원인이다. 한 국가 공동체가 쇠퇴하는 까닭으로 단지 정신이 타락했다는 단순한 설명을 작가는 납득하지 못한다. 대신 어떤 민족이 부흥한다면 그 시대에 부합하는 민족성이 발현했기 때문이고, 그 민족이 쇠퇴한다면 민족성이 시대와 불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그녀의 성자필쇠론을 어떤 일본 학자는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과 비교하기도 했다.

작가의 민족성에 대한 관심은 결국 그 민족의 지배층에 대한 관심으로 귀결된다. 근대 이전 사회에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복잡한 문제는 젖혀두더라도,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피지배층이 그들이 속한 민족이라는 범주를 대표할 리 만무하다. 그녀는 특히 서양의 지배층에 대한 일종의 낭만을 갖고 있는 듯한데, 어느 에세이에서 기사와 사무라이를 비교한 부분을 보면 그러한 의식이 엿보인다. 그 에세이에서 말하길 사무라이는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영주만 비호할 뿐이지만, 봉건제 아래 쌍무 계약을 맺은 기사들은 영지의 주민을 지키는 의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로마 제국 멸망 후 무주공산이었던 유럽에서 수백 년 간 제 마음껏 날뛰던 조직 폭력 집단이었던 기사들의 실체를 정녕 몰랐던 걸까.

사실 통치 능력이 우수한 지배 계급에 보내는 시오노씨의 따뜻한 시선은 모든 작품에 여실히 드러난다. 르네상스에 그토록 몰두했던 이유도 인류 역사에서 그 어떤 시대보다 양보다 질이 우선했던 시기여서다. 그녀는 르네상스에 대한 애정으로 인하여 르네상스 교황들의 부패에는 관대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과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가톨릭의 반동 종교 개혁은 일종의 종교적 광신이라고 비웃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작가가 정치 제도를 논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다. 그녀는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정치를 담당했던 계급이 어떻게 공적 영역에 복무하였는지 정성을 들여 설명한다. 귀족 계급의 자제들이 소년 시절부터 받는 교육부터 성년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 제도를 보고 있노라면, 두 국가의 흥륭은 이 헌신적인 엘리트들의 노력에 결정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자연스럽게 판단하게 된다. 또 베네치아의 10인 위원회, 로마의 독재관 제도를 자주 반복하여 언급하면서 공동체가 당면한 위급한 시기에 극소수가 중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체제를 강조한다. 공화국의 시민은 그저 그들을 믿고 충실히 따라 갔을 뿐이다.

엘리트를 사랑하는 그녀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에 냉소적인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작가에게 민주주의는 하나의 이즘에 불과하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 아니다. 민중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도 선정을 베푸는 통치 계급에게 지배당한다면 민중의 삶의 질은 보장된다. 식량 공급이 충분하고 내우외환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며, 거기에 법의 공정한 집행과 이익의 공정한 분배만 이루어지는 정치 체제라면 굳이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많은 숫자가 정치에 관여하면 도리어 그 체제의 효율을 떨어트릴 뿐이다. 시오노는 종종 어떤 나쁜 결과를 초래한 일이라도 애초에는 선의로 시작된다는 격언으로 민주주의라는 중우정치에 냉소를 보낸다.

그녀는 그렇게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을 펼쳐 내면서 그 증거로 과거 지중해 세계의 사례를 배치한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기준으로 읽지 말자고 당부한다. 과거의 사례를 근거로 현대의 이데올로기를 조롱하면서 말이다. 체사레 보르자를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던 선각자로 위치시키면서 근대 국민 국가 형성이라는 때 이른 관점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작가의 이러한 논지는 이미 스스로의 내적 일관성을 잃고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그녀가 즐겨 인용하는 카이사르의 말을 그녀에게 되돌려 줄 수 밖에 없다. 피지배 계급의 각성 없이 지배 계급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피지배 계급의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지배 계급이 선정을 베풀 수 있겠는가.

일본과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이 일련의 저작들이 서구에 번역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한 번역자는 번역 후기에서 이탈리아에 그녀의 책을 번역 출판하자는 제안을 시오노 자신이 거절했다는 에피소드를 말한다. 책을 출판해서 유명인이 되면 공공 도서관에 가도 조용히 사료를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란다. 허나 내 짧은 추측에는 그것보다 작가 자신의 저술이 유럽에선 별로 새로울 것도 없어서일 듯하다. 한국과 일본의 일천한 대중 역사서 시장에는 통했지만, 다른 시장에 별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하기야 시오노 나나미의 저술에 일관되게 깔려 있는 정치적 색깔은, 전체주의에 물든 일본과 한국 신민들에게 꽤나 적당할 것이다. 엘리트도 아닌 사람들이 엘리트의 지배를 찬양하는 책에 흠뻑 빠져든 모습을 보니, 가진 것은 없어도 정신만은 귀족인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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