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를 감금한 제자

사적 제285호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 천막이 들어섰다. 정문에서부터 본관에 이르는 부분에는 개교 백주년을 맞아 글로벌 프라이드를 갖추려고 겨울이면 누렇게 색이 변하는 한국 잔디 대신 사시사철 시퍼런 서양 잔디를 깔아 놓았는데, 썩 어울리지 않는 정경이다. 화장실만 해도 개조에 수억이 소요되었다는 호화찬란하면서도 고풍창연한 고딕 양식의 건물 앞에 지저분한 천막이라니. 천막에는 커다란 글씨로 4월 19일에 결정된 학교 당국의 징계 결정에 항의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아, 공교롭게도 4월 19일이다. 박정희의 군홧발에 짓밟힌 미완의 시민 혁명이 일어났던 날. 수십 년 전 이 학교의 학생들이 백골단에게 가해당한 사건이 혁명의 직접적인 기폭제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기록한 기념탑이 이 건물의 왼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올해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식목일 오후 세 시 즈음에, 백여 명에 육박하는 일단의 양아치들이 신성한 본관 건물에 난입하여 교무위원회가 열리고 있던 3층 회의장에 들어가려 했다. 교수들과 직원들은 회의장에서 보고 있던 자료들을 행여 그 놈들에게 빼앗길세라 황급히 수거하여 회의실 밖으로 반출하는 사이에 학생처장과 보건대학장이 복도로 나왔다. 학생의 탈을 쓴 폭도들은 그들에게 종이 쪼가리를 내밀면서 받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교수 두 명은 그것을 접수할 수조차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학생들은 자기네들 의견이 적힌 문서를 수리만이라도 해달라며 계속 대치하였다. 본관 복도에서 학생처장과 보건대학장이 억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처장들이 달려와 그들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될 때까지 학생들은 교수들을 풀어주지 않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의견서를 받지 않았다. 해가 밝은 뒤, 학생들은 요구 내용을 바꾸어 오후 세 시에 처장들과 면담을 요청하였고, 처장단이 이를 받아 들여 학생들이 해산하고 교수들이 풀려났다.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대학교에 소속되어 있었던 일부 학생들의 패륜적인 행동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고려대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첫 화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본관 교수 감금 사태 일지’라는 제목의 공지를 보면 된다. 저녁 시간이 되자 학생들끼리 김밥과 영철버거를 사와서 나눠 먹었다며 분노를 터트리는 수려한 문장도 있으니 교수들의 생생한 역정을 글을 통해서나마 공유해 보기를 권한다. 학생들이 먹을거리를 건네어 학생처장이 먹으려들자 다른 처장이 못 먹게 했다는 일화와, 직원들이 밤새 교수들 옆에 놓아두었던 전열기가 언론사 카메라가 도착하자 사라졌다는 이야기 등등은 행간에 숨겨져 있는데 마우스로 드래그해도 읽을 수 없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열아홉의 학생 중 일곱이 받은 징계는 ‘출교’다. 90년 즈음에 이 학교 학칙에 도입된 이후 최초로 적용된 징계인데, 퇴학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처벌로 재입학이 불가능한 조치다. 몇 년 전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결되는 광경을 보았는데, 과연 21세기가 되니 여태껏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내 아직 젊으니 오래 살아서 더 많은 기이한 꼴들을 기어코 구경하고 말테다.

학교 자유게시판에 징계에 찬성하는 학생들의 글이 많다는 어떤 찌라시의 보도가 있었다. 아무렴, 관리자가 징계에 반대하는 글은 자기 꼴리는 대로 삭제하는데 그럴 수밖에. “교수님, 죄송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서커스 행진을 벌인 ‘고려대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다며 무장 공비에게 총 맞고 순국한 이승복 어린이를 본받아 나는 운동권이 싫다는 구호를 채택했으면 조갑제 할아버지가 어여삐 여겨 주시지 않았을까. 전경들과 농민의 대립 때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고 칭얼대던 주장이 다시 떠오른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는 생각도 안 해 보고 그 양상이 옳지 못하다고 우기는 지극히 순결한 논리. 문제의 본질은 항의의 방식이 아니라 항의의 원인인 것을.

고려대학교 병설 보건대학이라는 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2006년 부로 폐교되었다. 기존에 보건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은 다니던 학교가 폐교되어서 기존의 교양과목을 들을 수 없고, 재수강도 불가능해졌다. 그들은 고려대학교 학생들과 똑같이 6%의 인상률이 적용된 등록금을 납부하였다. 보건대 2,3학년 학생들은 고려대학교가 인정한 고려대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올 봄에 이루어진 총학생회 재선거에 투표권이 없었다. 4월 5일에 본관을 점거했던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건네려고 했던 종이에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교육을 관장하는 국가 행정 주무부서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인 아름다운 나라에서, 교육은 산업이고 학생은 상품이다. 수험서 따위의 교육용 서적의 숫자에 힘입어 출판 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멋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새빨개서 무섭기까지 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학생이라는 피교육체에게 권리를 주지 않고 의무를 지울 때에 즐겨 사용되는 훌륭한 수사일 뿐이다. 그 흔한 말 대신에 교육 시장에서 생산되는 교육 서비스를 돈 내고 소비하는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질 높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와 자치 활동을 할 수 있을 권리를.

교수와 직원과 학생이 대학의 세 주체라는 고매한 이상은 집어던지고, 모든 사회 영역에 시장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유행에 부응하여 교육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시 자리 매겨보자. 교수는 재단에 고용된 몸으로 학생에게 강의를 하는 공급자이고, 학생은 교수로부터 교육 서비스를 구입하는 소비자이며, 직원은 이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 공급 보조자이다. 여기에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말이 끼어들 틈은 없고, 끼워 넣을 필요도 없다. 진실로 師表를 보여 줄 마음이 있다면 교수라는 직업에서 비롯하는 권위로 훈계할 일이 아니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될 일이다. 강의와 연구가 탁월한 교수는 성격이 까칠하더라도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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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客日

조만간 다시 가족과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날짜에 짐을 옮길지 이야기하다 어머니와 다투어 버렸다. 반드시 손 없는 날이어야 한다며 4월 27일을 고집하시는 어머니께, 주중에는 아무래도 여유가 없으니 주말에 옮기겠다고 우겼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손 없는 날이 좋다고 버티시기에, 컴컴한 평일 저녁보다 밝은 주말 낮에 이사하는 게 훨씬 수월하니 평일과 주말은 같은 값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일전에 집을 옮겼을 때도 날을 잘못 골라서 도둑이 들었다고 힐책하시는데, 그것은 단지 문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대답해도 듣지 않으셨다. 정 주말에 옮기겠다면 차라리 5월까지 기다리라 하시기에, 내가 지금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맞춰 내게 주어진 시간을 계획대로 꾸려 나가고 있는데 재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 때문에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일그러트려야겠냐고 논리를 세웠다. 어머니께 다홍치마 이상의 근거는 없었고, 30여 분의 말싸움 끝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마침내 어머니께서 뜻을 꺾으셨다. 손 없는 날을 고집하는 건 자식에게 행여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이 깃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라고 말끝을 흐리시면서…

예상 밖으로 길어졌던 통화 때문에 자정을 넘긴 시각에 욕실에서 몸을 씻으며 생각했다. 내가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까닭에는 휴일이 평일보다 편리한 시간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보다, 어머니께서 생활에 체화하고 계신 미신을 꺾어 보겠다는 옹졸한 욕망이 더 컸던 게 아니었는지. 이제는 머리가 굵어졌노라고 이성의 칼날로 전근대적 신앙에 빠져 계신 당신을 깨우치려는 심산이 아니었는지. 이번 한 번 이겼다고 해서 수십 년간 견지해온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승리의 쾌감보다 괜스레 어머님 심기를 편찮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행여 정말로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어머니께서는 이게 다 좋지 못한 날에 집을 옮겨서 그렇다 하실 게 아닌가. 그래,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사정이 바뀌었다며 손 없는 날에 이사하겠노라 다시 말씀드리자. 객지 생활 만7년 끝내는 날 하루 정도 좀 정신없이 바빠도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느냐. 게다가 아마도 이게 당신과 같은 지붕 아래서 지내는 마지막 시기일 터인데. 내 주장을 굽혀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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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라는 기업과 대학생이라는 기생 계급

기업 경영인들에게 당신네 회사의 경영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절대로 더 많은 이윤 획득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사립대학이라고 지칭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기업의 소유자는 재단 이사회이고 경영자는 총장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교수와 직원을 고용하여 졸업장이라는 주력 상품을 주요 고객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들에게 판매한다. 고객들은 사회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상품을 구매할 자격을 얻으려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며, 이 과정에서 대학 입학을 목적으로 하는 사교육 시장이라는 또 하나의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 기업의 주된 매출은 고객이 지불하는 등록금에서 나온다. 이윤율을 높이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등록금을 올리는 것이다. 이윤을 늘리겠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모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근거를 말해 달라 하자 “근거는 없다”고 솔직하게 실토했다 한다. 대학 졸업장 시장은 특수한 시장이라 소비자는 판매자가 제시하는 금액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뒤 비교적 안정된 고용 계약을 맺으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건인데다, 그것도 몇몇 기업의 생산물이 아니면 상품 가치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품 가격이 올라도 수요량이 낮아지지 않는 까닭은 상품의 특수한 성격에도 있지만, 상품의 대금을 지급하는 사람이 구매자와 다른 덕분도 있다. 한국의 대학생은 제 손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비율이 낮다. 등록금이 올 해도 몇 %나 아무런 근거 없이 올랐다는 사실은 평범한 대학생에게 제 부모가 내어야 할 돈이 더 늘어났다는 의미가 있을 뿐, 등록금을 벌려고 몇 시간을 더 노동해야 한다는 계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 품삯이 형편없는 사회에서 민법상 성년이 된 자들이 독립된 경제 활동을 영위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저임금에 시달리며 스스로 돈을 버느니, 부모에게 손 벌려서 대학시절을 보내고 가능한 빨리 질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제 손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는 학생들에게 등록금 동결 투쟁은 불의에 분노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제 삶을 위협하는 존재와 맞서는 투쟁이 될 수가 없다. 개별 학교에서 총학생회 단위로 학교 당국과 싸워봤자 남는 것은 의례적인 생색내기에 불과한 인상분 중 일정액 환급일 뿐이다.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법이 제정되지 않는 이상 매년 같은 모습이 되풀이 될 것이다. 사립대학들은 사학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교육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특정 경제 영역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다. 허나 전국 단위로 학생 대표들을 조직하여 정치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현행 소선거구제도에서 투표율이 낮은 대학생들의 환심을 사려고 관련 제도를 만들어 내겠다고 주장할 정치인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등록금을 실제로 납부하는 부모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값이 올라버려 사회 문제로 끊임없이 부각되어야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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