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날씨

오랜 만에 집에 혼자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방에 홀로 있기 싫은 때가 가끔 있더니 가족과 같이 살게 되니까 이런 시간이 도리어 반갑다. 고등학교는 개학이라 동생은 학교에 갔다. 동생이 다니는 학교 수준은 근방 학교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는데도 성적이 영 나오질 않는다. 이대로라면 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가기 힘들 것 같다. 수학과 속독 학원에 다니고 있고 EBS 방송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내신과는 잘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자기도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 지 고민하기는 하는데 공부에는 왕도가 없으니 특별히 무어라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아버지께서는 그냥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만 하시는데 그거야 쌍팔년도 때나 통하는 방법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니 굳이 대학 안 나오고 얻는 직업의 소득이 대학 교수와 별 차이 나지 않는 북반구 어느 나라 인민들 처지가 괜시리 부러워지지만 캐릭터 디자이너를 포기하고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이 아이 앞에서 그런 이야기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저 가능한 최고의 학벌을 따내기를 바랄 수밖에…

어머니께서는 요즘 소중형 마트에서 피죤 제품 판매 알바를 하시는데 오늘은 본사에 교육이 있어 역삼동에 가셨다. 아버지 회사가 부도난 후로 몇 번 째 직업이신지. 얼마 전까지는 메가패스 텔레마케터를 열흘 가량 하셨는데 고용 조건이 너무 좋았다. 4대 보험도 넣어주고 성과에 관계 없이 월급 보장. 그러나 메가패스는 요즘 유선방송 회사의 유사 상품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없고, 열흘 동안 어머니께서 올린 실적은 고작 계약 한 건. 관리자가 부르더니 그만 두기를 종용하면서 그동안 일한 임금은 그 한 건에 대한 몫인 십 만원만 떼주겠다고 했단다. 거기 입사할 때 사장과 면담했을 때 분명 성과 관계 없이 임금 보장이라 했다고 사장에게 다시 전화로 일단 확인한 상태. 다음달 월급 넣는 꼴을 봐서 싸우기로 작정하셨는데, 계약서를 써 둔 것도 없고 단지 구두였기 때문에 고작 열흘치 임금으로 다투기에는 비용이 더 많이 소모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어머니께서는 열흘 동안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어디서 받아야 하냐고 하셨지만, 본디 자본은 노동자가 이윤을 증식시킬 때에만 떡고물을 나눠 주는 게 자본주의의 철칙…

아버지께서는 지입 차량을 알아 보러 외출하셨다. 소공업가에서 소상인으로, 소상인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신분 몰락을 겪으신 아버지께서 오십이 넘어 팔아 먹을 수 있을 만한 기술은 고작 운전 기술 뿐. 인터넷 상점과 대형 할인 마트로 인해 기존 유통 체계가 완전히 붕괴하고 있다 하더라도 물류 운송만큼은 축소될 영역이 아니니까, 바닥 인생들이 많이 덤비는 직종인데 아버지께서도 결국 여기에 합류하시게 됐다. 이것도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게 바뀌었는데 몇 번 씩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지만 고등교육까지 받으신 아버지께 그깟 하급 자격증 시험이 대수랴. 한 번에 합격하시고 이런 걸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면서 웃으시는 그 모습에 나는 뒤돌아 눈물 짓는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으로 일할 만한 곳을 찾고 계신데 어깨 너머로 봐도 물류 운송 산업 구조가 얼마나 좃 같은지 체감할 수 있다. 학습지 교사, 보험 판매원처럼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게 하여 실제로는 고용 관계인데도 법률상 도급 관계로 치환시켜 버려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간단히 회피해 버리는 회사들. 왜 차량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구매해서 운행해야 하는 건가. 화물연대 파업 이야기가 결국 이렇게 내 현실 속으로 들어 와버렸다. 화물운송업의 부조리를 지적하자 아버지께서는 정부에서 기름값만 내려줬으면 하신다. 정부에서 할 일은 기름값 인하가 아니라 불합리한 고용 구조 개선이 아닐까. 아버지께서는 돌아오는 대선에 또 한나라당을 찍으실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까닭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다. 한 달에 구 만원하는 검도는 한 달 다니고 나니 집안 사정이 뻔히 보이는 형편에 이번 달 수련비 달라고 말씀드리기 죄송해 못 가고 있다. 외출하면 어떻게든 돈이 나가니 어떻게 좀 아껴보자고 집에서 버티고 있기는 한데 잘 하는 짓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외 하나만 잡으면 용돈이야 벌어 쓰겠지만 영 내키지가 않으니 나도 참 배가 불렀다. 아직 노동력을 시장에 내다 팔 가능성이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덕이지. 그나 저나 요 몇 달 동안 외할머니 점포와 부산 옛 집의 세입자들이 세를 제대로 안 내 어머니께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신다. 어머니께서는 이 모든 근심과 걱정을 기도로 해결하시려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읽어 보시라고 마스다니 후미오의 불교 개론을 건네 드렸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붓다의 진정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는 맹자님 말씀이 먼저 떠오른다. 엊그제는 북상하던 태풍 탓이었는지 매미 소리 아직 들리는데 창 밖 하늘이 너무 파랬다. 아직은 희멀건한 색깔이었으면 좋겠건만.

3 Comments

縱走 失敗

그렇게 몇 달 동안 노래를 부르던 지리산 주능선 종주였건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 때문에 완주에 실패했다.

애초에 화엄사 계곡을 오를 때부터 힘에 부쳤다. 기차를 갈아 타며 내려 오는 동안 잠을 1시간 정도 밖에 못 잤기 때문에 몸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45리터 배낭에 짐을 가득 채우고 산을 오르는 일은 같은 짐을 짊어 매고 평지를 걷는 일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었고, 내 얇은 허벅지 근육이 지탱하기에 벅찬 일이었다. 중간에 바위 위에서 쓰려져 한 시간 정도 잤고, 계곡물에 한 시간 정도 발 담그며 쉬었던 것을 고려한다고 해도 새벽 다섯 시에 화엄사 매표소를 통과해 정오에 노고단에 도착한 것은 상당히 느린 속도였다.

현명하게 성삼재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한 우람이가 합류한 뒤 뱀사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비가 왔지만 그럭 저럭 속도는 평균치만큼 낼 수 있었고, 4시 반 무렵에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고단해서 내일 이 계곡을 따라 내려 가자고 하였다.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7시부터 자리를 배정하였고, 두 사람이 자기에도 그리 넉넉치 못한 공간에 세 사람이 칼잠을 자야 하는 공간에 누을 수 있게 된 순간에 바로 몸을 뉘인 채 정신 없이 잠을 탐하였다. 4시간 가량 지난 뒤 요의과 갈증을 동시에 느끼며 잠에서 깼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았다. 듣자니 산에서는 공기가 맑아 재충전이 빠르다는데 그럴싸한 말이었다. 몸상태가 꽤 괜찮은 듯 싶어 마침 그 시간에 깨어있던 우람이와 다시 얘기하여 예정대로 일정을 강행하기로 하였다.

다음날, 오르막을 오르기는 꽤 힘들었지만 연하천, 벽소령, 세석 대피소까지는 얼추 평균 소요 시간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형제봉과 칠선봉이 힘든 구간이었다. 문제는 세석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봉우리에서 꽤 긴 계단을 휴식 없이 오르던 와중에 왼쪽 무릎 근육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서 더 이상 걷기 힘들어졌다는 사실. 장터목까지는 2시간 동안 네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했고, 이 다리로 다음 날 천왕봉까지 올랐다가 대원사 계곡으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세석에서 하룻밤 묵고 거림골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푹 잠을 자고 난 뒤였지만 다리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세석에서 내려 가는 길 중 거림골이 가장 쉬운 코스라고는 하였지만 역시 계곡 자체가 오르기에 쉬운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왼다리를 질질 끌며 어찌 어찌하여 서울 남부 터미널까지 패잔병처럼 도착했다.

이 정도 장시간 산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2박 3일 동안 걸으면서 역시 등산 전용 장비는 장비값을 한다는 점을 느꼈다. 옷이 기능성 소재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잘 마르지 않았을 것이기에 한 벌만 들고 가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10만원이 넘는 등산화 덕에 그렇게 걸었는데도 발에는 물집 하나 잡히지 않았다. 신은 지 12시간이 지나니 새끼 발가락 두 개가 꽤 아파오기는 했는데 어찌 해결할 수 있을 지 걱정이기는 하다.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이 모이면 극한 상태에서는 꽤 심각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데 적어도 이번 산행 중에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난점을 극복하는 것은 강인한 체력. 장비고 뭐고 간에 일단 기본 체력이 없으면 소용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다음으로 구비하고 싶은 것들은 일단 기능성 소재로 짜여진 속옷과 수건, 등산 양말, 헤드 랜턴 정도.

졸업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그때까지 되도록 근교 산을 자주 오르며 다리 근육을 단련하여야지. 화엄사 계곡을 제치지는 않겠다. 등산에서 계곡을 오르는 일을 생략한다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등산이 아닌 것 같아서. 가뿐히 종주할 수 있도록 체력 강화만이 남을 뿐. 다만 일정은 3박 4일 정도로 여유롭게 잡으련다. 짧은 시간 동안 정신 없이 걷다보니 산을 제대로 감상한 시간이 없어 매우 아쉬웠다. 같이 갈 사람도 이제 없을 듯 하니 혼자서 가는 게 3박으로 잡기에 편할 것이다. 성수기에 가지 않고 장마만 피해 6월 말에 가면 라면은 대피소에서 사서 먹어도 될 것이다.

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