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不和
어제 밥상에서 아버지와 다투고 말았다. 며칠 전부터 북한에서 핵실험을 한다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며 혀를 차셨다. 어머니와 동생이 그에 대꾸할 리 없고 결국 내 반응을 떠보려는 말임에 틀림 없으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견이 충돌할 게 뻔하니 애써 무시하다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마침내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신의 불만은 한 가지로 집약된다. 무능한 김대중과 노무현이 북한에 계속 조공을 바치고 있다. 당장 그런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고 북한을 고립시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 나의 견해는 다르다. 북한이 그렇게 급속하게 붕괴되면 남한이 아니라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협력을 통해 북한이 남한에 계속 의존하게 만들어 장시간에 걸쳐 남쪽 체제에 동화되게끔 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햇볕 정책을 버려서는 안 된다.
아버지께서는 따지셨다. 그게 결국 북한한테 남쪽으로 쳐들어 오지 말라고 돈을 갖다 바치는 게 아니냐고. 국가의 자존심도 없냐고. 역시 내 생각은 다르다. 북한에서 남한의 경제 원조를 자기 체제에 대한 진상품으로 여기든 말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남북한이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언명하지만 결과적으로 북쪽이 남쪽 체제로 동화되는 꼴로 귀결되리라는 짐작과 동일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북한 수뇌부는 미친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네들의 목표는 자기 파멸이 아니라 체제 유지다. 북한이 남한을 먼저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만약 이라크 게릴라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북한은 감히 핵실험을 할 엄두를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이 남한보다 무력이 떨어진다면 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냐고 반문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잠깐 넋이 나갔다.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남한의 군사력이 우월하다고 해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깟 전쟁 때문에 내 목숨을 바치고 싶지 않다. 그러자 대뜸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국가가 필요로 하면 개인은 목숨도 바칠 수가 있어야지! 국가가 존재하니까 개인이 존재하는 거야. 나는 지금이라도 전쟁이 나면 군대에 지원하겠다!”
아아, 그러세요. 개인은 국가의 부속품이라구요. 매일 같이 인터넷 뉴스를 훑어 보는 당신께서는 아마도 전쟁이 났을 경우 참전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남한 젊은이의 참전 의사가 가장 낮았다는 기사를 보셨을 테고, 그런 현상을 개탄하고 싶어하는 기성세대로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 터이다.
나는 당신이 소득세를 적게 내기 위해 소득 신고를 정직하게 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이 평소에 단속에 걸리지 않을 만큼 교통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남들도 다 하는 짓이니 나만 안 하면 손해라고? 나의 시민적 양심은, 감히 개인이 국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을 제 입 밖에 스스로 꺼내 놓으려면 평소에 납세와 질서라는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왔어야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당신은 삼성장군을 아버지로 둔 친구의 덕으로 20대의 3년을 몇 주 간의 군사 훈련으로 갈음하였다. 그랬던 당신이 나이 오십이 넘어 국가의 부름에 당당히 응하겠다는 이야기는 가소로웠다. 박정희 시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삶에서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남들한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가치가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신이 가여웠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이 말을 정말로 내뱉었더라면, 고등학교 2학년 때 80년 광주를 주제로 다투다 뺨을 맞은 이후로 처음 당신이 나를 손찌검했을 지도 모른다. 구타가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나도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는 당신에게 가만히 순종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물리적 힘으로 당신을 꺽어서 가부장의 권위가 무너지고 가정의 질서가 흐트러질 꼴이 단지 두려웠다. 나는 아직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성년이니까.
부모가 자신의 영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신적 미성년자들이 아닐까. 부모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존경해야 마땅한 존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