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월드에서 온 초대장 : 미야베 미유키의 『마술은 속삭인다』

사회파 미스터리. 미야베 미유키라는 일본 작가에 대한 평 중에서 빠지지 않는 용어다. 왠지 좀 무겁고 단단한 느낌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순수문학과 참여문학 논쟁 구도와 비슷하게 본격 미스터리에 비해 추리소설의 실천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런 선입견으로 책을 펼쳐 보자.

초반부터 제법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젊은 여자 둘이 죽었다는 신문 기사가 인용되는 프롤로그가 지나가고 1장에서 주인공 소년의 가족과 친척이 차례로 열거되며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 이름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계속해서 던져지는 모종의 사건. 아직까지는 처음 등장했던 사건과 어쩐지 연관되어 보이는 약간의 실마리만 주어진 상태다. 소년은 자신과 관련된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나름대로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의문을 얻게 되며, 해답을 찾으려는 여정을 떠난다.

인물들의 이름에 슬슬 익숙해질 즈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쉽사리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인물 파악이 덜 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소설가들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간혹 작중 인물이 작가의 통제력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경우를 듣는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죽였다가 다시 살려 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미야베 미유키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완벽하게 장악한다. 미야베 월드 사람들은 그녀의 지도를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다. 이토록 캐릭터의 성격이 미리 잘 짜인 경우 자칫 생동감 없는 꼭두각시놀음에 빠지기 쉬운데, 그녀의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만큼 원숙하고 농밀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덕분이다. 빈약한 필력의 소유자가 늘상 저지르는 인물 성격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찾기 힘들고, 오로지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묘사만으로 모든 것을 이룩한다.

인물 묘사가 좋다고 소설의 소재가 되는 사건 자체에 대해서 소홀하지도 않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체는 여기서 폭로된다. 전형적인 추리물과 다르게 작가는 사건의 범인을 추궁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건과 이어져 있는 사람들의 관계와 그들의 감정을 함께 보여준다. 범죄자의 가족, 피해자의 가족, 범죄가 잉태되는 세상…. 보통의 추리 소설에서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초점이 맞추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면서, 미스터리는 현실에 편입되고 설득력을 얻는다. 책장을 덮을 때면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벅찬 감흥이 마음 속에 차오르게 된다.

지금까지 번역된 작가의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요건을 충족하면서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마술은 속삭인다』로 미야베 월드에 처음 방문했다면 미야베 월드 시리즈의 다음 차례를 기다려도 좋고, 출간되어 있는 다른 소설을 읽어도 좋다. 단, 역시 주의해야 한다. 일상에 구멍이 뚫리는 수가 있다. 특히 ‘이유’나 ‘모방범’처럼 긴 이야기의 경우 더더욱. 이미 미미 여사의 책을 읽어 온 독자라면, 새로 나온 그녀의 책을 집어 드는 데 추호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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