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等 敎育의 目的

열흘 전 점심 무렵 구포역전에서, 대략 일곱 시간 전쯤 택시에서 헤어졌던 청년 셋이 다시 모여 어묵과 떡볶이와 순대를 나눠 먹으며 상행선 열차를 기다리다가 옛날 학교를 자퇴했던 친구 얘기가 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절도의 혐의를 받고 학생이기를 포기했던 친구였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고 도난 사고가 종종 일어났는데, 저학년의 자습실에서 사라진 물품 중 하나가 그 친구의 공간에서 발견되었다. 야밤에 쇼핑백을 들고 으슥한 복도를 지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게다가 어찌하다 보니 그는 선배로부터 몰래 물려받은 기숙사 마스터키를 지니고 있었다.

매일 밤 그와 어울리던 무리가 매일 밤 그를 매섭게 추궁하였고, 나와 룸메이트가 쓰는 방으로 그가 쫓기듯 찾아왔을 때 나는 복층 침대 위층에 누워 잠든 척하였다. 룸메이트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 진실을 말해달라고. 그렇다면, 친구로서 끝까지 믿어주겠다고. 그는 울먹이며 거듭 자신의 결백을 토로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귀가하는 날이 돌아왔고, 그는 다음 주 월요일에 등교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내신 때문에 자퇴하는 친구들도 적잖은데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시간이 늦어 올해 검정고시 볼 수는 없겠지만 내년에 꼭 국립대학 들어가라며 나는 먼저 사립대에 들어가 있겠노라고 농을 주고받았다. 웬만큼 성적이 나왔던 친구였기에 적어도 이년 뒤에는 수도권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울로 진학한 가까운 동기들이 모두 군대로 끌려간 무렵, 그는 중국으로 떠났다. 결국, 아무런 학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로.

그가 학교를 떠났던 즘에 공교롭게도 그의 신변에는 다른 문제가 겹쳐 있었다. 그와 사귀던 동기가 모 대학 1학기 수시 모집에 합격했는데 그는 이를 내심 못마땅해했고, 결국 그녀가 부모 앞에서 합격증을 찢어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어머니는 학교로 찾아왔고, 그의 어머니도 학교로 찾아와 아들의 잘못을 사죄했다. 어머니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그는 3학년 부장교사에게 얼굴을 난타당했고, 제 코와 입에서 떨어진 핏물을 제가 직접 대걸레로 닦아냈다. 두 문제가 일어났던 시기가 겹쳐 있었던 탓에, 동기 중에는 그가 자퇴한 까닭을 둘 중 하나로만 아는 경우가 제법 많다.

졸업 앨범 단체 사진에는 얼굴이 실려 있지만 개인 사진은 실려 있지 않은 그의 모습이 늘 마음 한편에 어둡게 놓여 있었다. 나는 왜 그를 변호할 수 없었을까. 객관적인 정황으로 보았을 때 누가 보아도 그가 절도범일 것이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위법한 행위 앞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게 부모와 교사가 정해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비교적 모범적으로 자라난 만 십칠 세 소년의 사고 수준이었다.

해답의 실마리는 역 앞에서 오뎅 국물을 들이켜던 당시 룸메이트의 입에서 나왔다. 과연 학교에서 쫓겨나갈 정도로 큰 잘못이었나. 그제야 비로소 비도덕적인 친구를 옹호할 수는 없다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우리는 왜 레 미제라블을 읽으면서도 용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가. 지금은 장학사가 되었다는 그 교사는 페스탈로치처럼 제 학생을 지도할 수는 없었는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없었던가. 나는 그때 부장교사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혹독하게 꾸짖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끈기 있고 너그러운 포용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선생님의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그건 교육이 아니라고.

이제 다 소용없는 말이다. 그는 계속 후회하며 살아야 한다. 성년이 되고 나서 간혹 그를 만났을 때도 그 사건을 화제로 올린 적이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언어로 뱉으면 조금이나마 아물어질까.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용기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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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學部生들의 憤怒

휴학생이라 사물함 배정을 늦게 받는다는 핑계로 일주일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늘 점심나절에야 학교에 도착해보니, 지난주 월요일에 개관한 법학도서관은 1층 출입구만 열려 있었다. 지하 1층 출입구를 통하면 다른 곳으로 나가기 훨씬 편할 터인데도 아마 행정당국은 보안 및 관리 문제로 문을 개방하지 않은 모양이다. 사용하지 않을 문은 무엇 하러 만든 것일까. 아마도 소방 관련 법규 때문일 것이다. 굳게 잠겨진 문보다는 차라리 벽이 낫다. 씁쓸한 마음이 생기게 할 여지조차 없으니까.

법학도서관이 개관한 덕에 법학신관 5층에 자리 잡고 있던 열람실과 스터디룸, 컴퓨터실을 비롯하여 4층 정보화센터도 모두 사라질 예정이라 한다. 대신 교수 연구실과 대학원생을 위한 공간이 들어설 계획이라 하는데, 익명의 자유가 사라진 법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는 이를 성토하는 학부생들의 의견이 여럿 보였다. 학부생들의 공간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그네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지만, 어쩐지 못내 허전한 기분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3불정책이니 뭐니 하며 핏대를 올리며 인적자원부와 각을 세우는 대학 당국에서 그토록 신경 써서 뽑은 학생들은, 열람실 책상에 칸막이가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더 많은 장서의 비치가 아니라 수험서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간 확보에 있다. 중앙도서관 서가 근처에 마련된 책상마저 점령해 버린 수험생을 보며 서글퍼지던 감정을 새삼스럽지 않게 또 느낀다. 얼마 전에 빌린 『오늘의 세계적 가치』를 다 읽어 가는 탓인지, 오늘따라 괜히 더 울컥해지는 듯하다. 중심부 학생들은 주변부 문제까지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나라의 학생들은 고작 수험 환경에 관련된 문제에만 겨우 공적 관심을 표출할 뿐이라니.

학생이 학교의 구성원이랍시고 왜 법학도서관 건립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느냐는 문제 제기는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주장을 하는 학생들은 작년 벌어졌던 출교 사태에 어떤 입장이었을까? 학교 행정 담당자들에게 학생은 등록금이나 꼬박꼬박 내주면 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건가.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는 계기로 만들어 갈 구심점이 될 사람들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도 별 수 없이 손끝만 살아서 자판을 두드릴 뿐이다. 참으로, 침묵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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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事의 이름

교내 모 신문이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관련된 판사 이름을 공개에 대한 찬반 여부를 놓고 1층 승강기 앞에 여론 조사를 하고 있다. 이런 사안을 두고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건 잘못된 관념을 심는다. 그것을 공개하느냐 마느냐는 논란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은 당연히 공개되어 있다. 대법원 판례 DB에 등록된 사건이라면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논란에서 거론되는 ‘공개’란 비공개 되어 있는 사항을 공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정한 범주에 묶을 수 있는 사건들에 관여한 법관의 이름을 공적 권위를 지닌 기구에서 한 데 모아 본다는 의미다. 승강기 입구의 여론 조사 판에는 반대하는 견해가 조금 많아 보였다. 그러한 판결을 받을 사람으로 살기보다 그러한 판결을 내릴 사람이 되길 꿈꾸는 인간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르신들이 그 당시 정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법복을 벗어야 했다. 사법 파동 때 살아남은 그분들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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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死

파병 부대원 중 사망자가 나왔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노는 대한민국 정부가 김선일 씨의 죽음을 방조했을 때 메말라 버렸다. 모 당의 정 모 의원은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기사를 본 평범한 18세 소녀가 비웃었다. 그런 법을 만들면 테러가 일어나지 않느냐고. 보상금이 몇억이고 무슨 훈장이 수여된다고 한다. 죽고 나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전사냐 순직이냐를 두고 밤의 주둥아리들이 손가락을 두들긴다. 전쟁에 목숨을 바치는 짓은 고귀한 행위라는 그네들의 의식에 내재한 판단이 두렵다. 그래, 침략에 저항하는 쪽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성스러울지도 모른다. 오늘도 한반도에 거주하는 인간들은 ‘모슬렘 테러리스트들’의 희생 덕에 제 나라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전쟁을 피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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