矛盾

신고전학파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완전경쟁시장을 이상적인 시장 형태라고 가르친다. 장기균형상태에서는 모든 기업이 정상이윤 이상을 획득하지 못한다. 시장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를 벗어나 현실을 정말로 그렇게 가꾸려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기업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성 같은 기업이 온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강변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5%라는 사실은 일단 제쳐놓고, 몇 개의 큰 기업이 한 국민 경제 안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대부분을 차지해도 된다는 말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지 못한다면 왜 기업을 꾸리겠느냐는 반문이 있을 법하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부의 척도로 단일국민경제가 얼마나 많은 황금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물산을 생산하느냐를 꼽았다. 당최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얻어야 한다는 중상주의적 사고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함께 견지하고 있는 두뇌구조는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변명이 나타날 차례인가. 그렇다면, 그런 이론 그만 좀 읊조리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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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타령

삼월에도 꽃 구경이 힘든 서울의 봄은 아직 낯설다. 윤중로에 벚꽃잎 수만큼 사람들이 모여들 즘이면 남쪽 해안가의 벚나무들은 이미 잎을 틔웠다. 이십 년 동안 자란 도시에서 진해는 지척이었지만, 군항제에는 딱 한 번 가 보았다. 서울 올림픽과 더불어 마이카 시대가 막 열렸던 시절이었다. 한여름 해운대 백사장을 맨발로 밟은 경험도 단 한 번인데 같은 해가 아니었나 싶다.

중고 자주색 포니 2의 앞뒤좌석에는 어른만 다섯은 탔던 것 같다. 나와 사촌 누나들은 각자 어머니의 무릎에 안겼다. 해사한 꽃잎을 날리는 나무가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줄지어 섰고, 그 사이에는 걸음걸이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이 늘어섰다. 취학아동이 되고 나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에는 나이보다 의젓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실없는 장난을 치곤 했던 꼬마는 다리에 쥐가 날만큼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따분했다. 문득 뒤에 앉은 누이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몸을 왼쪽으로 돌릴 수도 있었지만 차창이 모두 열려 있어서 얼굴을 내밀고 뒤쪽을 들여보았다. 그냥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심심하기에 제법 큰 목소리로 ‘안녕’이라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이모부가 이 녀석 보라면서, 벌써 길 가는 처녀에게 수작을 건다고 타박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고 거세게 항변을 해보아도, 지루했던 어른들에게 여섯 살 어린이의 돌출 행동은 흥미로운 놀림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집에 돌아올 때까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점잖은 아이라도 그 나이에 어른들의 심리를 이해하기는 무리였다.

아마 그때 겪었던 경험이 낯선 異性에게 말을 거는 일은 부끄러운 짓이라는 강박을 심었는지 모른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렇게 벚꽃이 핀 길을 걷다 보면 어떤 사람들의 얼굴과 그날의 기억이 교차하고는 한다. 이게 다 너희 탓이라며, 애꿎은 꽃들을 상대로 하릴없는 푸념을 늘어 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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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봄날

새로 지은 법학도서관으로 공부 장소를 옮겼다. 책상도 넓고 무엇보다 의자가 편해 좋다. 다행히 도서관 지하 2층 사물함에 당첨이 되었으니 동선도 매우 짧아질 듯하다. 3월 한 달 동안 겨우 채권법을 보았고 아직 가족법 기출 문제 확인을 하고 있다. 정회철 헌법 기본강의가 10일에 다시 출간된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마무리해야 할 텐데, 하루 순수 여덟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얼른 처음 6주 동안의 기세를 되찾아야 한다. 24일부터 2박 3일간 동원훈련에 소집되니 형법은 5월 첫주가 지나야 기본강의를 듣게 될 것 같다.

며칠 전 1차 발표가 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영산대로 진학했던 친구가 붙어서 기쁘다. 3월 말에 우연히 마주친 한 동기는 예측 컷라인에 점수가 걸려 있어서 예비순환 강의를 들으면서도 불안한 눈초리더니, 명단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식사나 한 끼 같이 하자고 하였는데 당분간 얼굴 보기가 어렵겠지.

도서관과 식당만 오가다 보니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만, 그래도 간혹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기도 하다.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니, 몇 학기 남았니, 어학연수는 안 가니, 시험 준비는 잘 되니 따위의 말들을 늘어 놓다 다음에 보자며 뒤돌아선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만남이 각자의 견고한 일상에 끼어들 가능성은 작다. 만나자는 연락을 부러 끊어내지는 않지만,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까 싶어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다가도 이내 슬라이드를 닫아버린다. 죽지만 않는다면 다시 만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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