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1.

주변에서 학생 예비군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애들이 말을 아주 잘 들어서 예비군 교관들이 흐뭇해한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서 세칭 모범생의 특징을 생각한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명령과 권위에 충실하게 복종하는 것. 설령 마음속으로 못마땅해하더라도 집단에 속해 있을 때 그런 불만은 결코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우등생은 지적 능력이 탁월한 인간이 결코 아니다.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라는 부모들의 탄식과 상통하는 얘기인데, 한국에서 통용되는 공부라는 행위를 수년간 지속적으로 행한다는 게 실은 인간이 평생 발휘할 인내력의 대부분을 뽑아 먹는 짓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동안 치를 수험을 대비하는 ‘교과서’의 면면을 보라. 학계 통설만 잘 조합해 놓은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복거일이 말했듯 교과서는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지식을 모아 놓은 책이므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교과서 내용을 모르고 더 배운다는 일은 있을 수 없기는 하다. 문제는 교과서 지식 이상을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과서 내용에 바탕을 둔 수많은 오지선다형 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내는 연습이 한국에서 일반적인 ‘공부’다.

시험 성적이 상위 0.1% 안에 들어가는 학생이나 100%에 걸려있는 학생이나 배우는 내용이 완전히 똑같다. 그러고도 소위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적인 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뻐기는 사람이 있다면 참말로 가련한 인생이다. 그런 인간은 평범한 사람이 잘 견디기 어려운 과정을 참아내는 능력이 뛰어날 뿐이다. 막말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 놓는 의지가 빼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KS 마크를 달고 삼시에 합격했을 정도면 한국 ‘공부계’에서 이룰 건 다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사람이 미국에 유학 갔다가 중도에 포기한 이유가 이렇다. “나는 글을 읽으면 암기하는데, 미국 애들은 그걸 읽고 자기 생각을 얘기하더라. 미국대학생들은 역시 우리보다 한 수 위다.” 이런 인간이 양산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학생들이 교과서류의 책만 읽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통설은 그 학설이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최근에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한반도인들이 진정한 농경민족이 되었다는 주장을 읽었다. 조선 초기에 농업 생산성이 급격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조선인은 굳이 해외 무역을 할 필요를 못 느꼈고, 발전한 생산력에 맞추어 근대 국가 수준의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될 수 있었으며, 여말선초에 벌어진 정치적 분쟁은 생산력이 증대된 토지를 누가 어떻게 소유하느냐를 두고 벌어졌다는 얘기다.

20세기 이전 한반도 역사에 대한 지식 습득을 20세 이후로 거의 하지 않은 나로서는 단지 고려말과 조선초에 심경법 같은 농사짓는 방법이 발달했다는 단편적인 지식만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으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주장이었다.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에게 물어보니 아마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해마다 같은 땅에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 서술이리라 답해주었다. 한반도에는 항상 땅보다 사람이 많은 영세농업만이 가능했는데 세종 때부터 시비법 등의 발달로 휴한지를 인정하지 않고 매년 세금을 때리는 게 가능했다는 것. 헌데 이게 이설이 많아서 고려시대부터 연작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어 국정교과서에는 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점이 교과서의 한계다. 교과서만 읽으면 거기에 서술된 이론을 마치 처음부터 자명한 진리로 여기게 된다. 인간이 궁리하는 모든 생각은 역사적으로 성립된다. 인간의 비판 능력은 개념의 역사성을 인식하는 데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교과서는 필연적으로 학문의 역사성을 은폐한다. 법의 이념이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이라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라드부르흐의 정의론이다. 이 의견을 누가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내놓았는지 전혀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이해하라는 건 학생의 비판력이 생겨나는 걸 처음부터 봉쇄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깨칠 여지는 거의 없다. 갈리마르 데쿠베르 총서가 좋은 이유는 어떤 대상이라도 그것을 근대인이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지부터 서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 문명을 다룬다면 이집트 유적을 발굴하는 과정부터 다루는 식이다.

서울대 공화국에서 아직 KS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비판력이 없는 그들에겐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건국 영웅’들이 지녔던 결단력조차 없다. 그저 책만 달달 외우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잘할 뿐이다. 하긴 책 읽는 일조차 학위를 따고 나면 끝이다. 명문여대 출신 국회의원 같은 부류에는 없는 무엇이 고졸 대통령에는 있다.

2.

어찌하다 보니 지인의 대부분이 강한 인내심을 발휘한 덕에 학벌 구조에서 상층에 있는 편이다. 가끔 이런 집단이 사회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착잡할 때가 있다. 청년 실업이 어쩌고저쩌고해도 고급 자격증 시험에 붙거나 고등고시에 합격하거나 남들이 선망하는 기업에 들어가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제도 오랜만에 싸이월드를 잠깐 돌아다니다가 샘숭에 취직한 사람을 두 명 보았다. 내가 속한 단과대에서는 굳이 시험을 안 보더라도 대기업 법무팀에 취직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가 보더라. 다만 상사로 모셔야 하는 또래 변호사와의 비교를 못 견디고 신림동으로 뛰어들어가는 게 문제지.

그러니까 나도 운이 좋아 그래도 아직은 먹고살 만한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은 계층에 속해있는 셈이다. 이보다 사정이 좋지 못한 계층과의 접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에서 보충역 근무를 하는 선배 한 명은 동료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은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사람과 술을 마셔 보는 게 처음이라는 말을 하였다 한다. 언제 한 번 가보았던 사주카페에서 만난 역술인은 운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은 결국 사회 계층 사이에 나타나는 단절을 뜻한다.

나도 보충역 근무지 또는 예비군 훈련소에서나 나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더 큰 집단에 속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을 뿐이다. 다른 예외가 있었다면 4년 전에 참가했던 국토대장정 정도.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평등한 사회라는 말이 통하는 게다. 평균 소득이 백만 원 남짓 되면서 리니지 현질에 몇십만 원을 쏟거나, 달마다 이동통신사에 십몇만 원을 바치거나, 여자를 끼고 노는 술집에 다니는 군상들…. 고향에 남아 있는 어렸을 적 친구 가운데 이런 유형에 해당할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내가 살면서 그들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만나도 옛 추억을 겨우 끄집어 내는 일 말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많은 경우에 내 주변 또래 집단은 문자나 숫자 같은 기호 해독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단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일을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육체 노동자는 기호 해독을 할 수 없지만 기호 해독자는 육체노동을 할 수 있으니 역시 기호 해독이 더 교육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우월한 노동이라면서. 나는 이런 견해에 결코 동조할 수 없다. 그네들이 무시하는 그 노동을 그들에게 시키면 제대로 수행해낼 인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80년대 숭고한 이념을 쫓아 공장으로 침투했던 학생운동가나 기호 해독 시장에서 완전히 쫓겨난 퇴물을 제외하고는.

그렇다고 모범생들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자산을 움켜진 최상위 계급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지는 않다. 그런 일은 역사의 격변기에나 가능할 뿐이다. 이제 당분간은 그저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마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더 많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쥐고 싶다면, 살인적인 체제가 더는 무산계급의 숨통을 열어주지 않아 그들이 거리로 나서 세상이 들썩거릴 때를 잘 노려야 할 것이다.

3.

어린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잔인한 얘기를 아직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도권 교육에서 획득한 성적은 바닥에 가까웠지만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국민학교 6학년 때의 급우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노력만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라며 달콤하게 속삭이던 음성은 어느 사이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했느냐.”라는 질책으로 변해 버리고, 꿈과 희망을 모두 잃은 인간은 체제의 부속품으로 목숨을 연명하다 세상을 뜬다. 차라리 그런 얄궂은 현실을 처음부터 알려주고 그런 현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낫다.

평균 수명의 1/3을 소비한 시점에서 남은 소망이 있다면 내 또래와는 구별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 하나. 이것도 단 하나의 욕망으로 환원하자면 옹졸한 인정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겠지마는. 결국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공포만을 마음에 품고 사는 셈이다. 크레타 어에 기원을 둔 영웅의 본래 의미는 사람들에게서 잊히지 않는 사람. 불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욕심은 버리려고 해도 완전히 비워지지가 않는다. 마르크스는 스물아홉에 ‘공산당선언’을 썼고 비트겐슈타인은 서른 살 무렵에 ‘논리철학논고’를 출간했다. 칸트나 롤즈 같은 늦깎이도 있지만, 내가 평생을 한 가지 주제에 집착한다 해도 독창적인 사고를 내놓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좋다.

벗들은 나더러 냉소적이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되묻는다.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어떻게 냉소적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거짓된 긍정의 힘 속에 기만당하며 사느니 염세주의자로 살다 죽으련다. 제대로 된 허무주의자는 침묵할 뿐인데 나는 아직 입을 열고 있으니 그렇게 살 수도 없다. 그저 한계를 설정하고 가능한 일을 조금씩 성취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남들과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은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으니 그쪽에 대해서는 미필적 고의를 지녔다고 하겠다. 되면 좋지만 안 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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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

*이 글은 2007년 5월 29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홍기빈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한미FTA 전반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어떤 부문에서는 이익이고 어떤 부문에서는 손해라는 식으로 파편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 일은 대중 기만이다. 한미FTA는 단지 무역에 관련된 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이다. 경제통합에는 관세 면제부터 시작해서 통화까지 통합하는 수준까지 있을 수 있는데, 한국과 미국이 맺은 FTA는 정치경제 제도와 운영에서 같은 수준의 통합이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이러한 FTA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도다. 사실 이 번역은 올바르지 않다. Investor-State Dispute, 줄여서 ISD는 어디까지나 재판이 아니라 중재에 관한 제도이므로, 그냥 투자자-국가 분쟁 정도로 옮기는 게 낫다. 정부에서는 ISD를 외국 투자자가 부담할 위험을 달래주어 안심시키려는 국제 표준이라 말한다. 1930년대에 있었던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국유화나 쿠바 혁명 때 있었던 미국인 소유 사탕수수 농장 몰수 사건은 투자자들의 악몽이다.

혁명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뺏는 일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ISD가 도입된 셈인데, 이 제도의 기원은 중세 유럽 상인법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상인들은 거래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복잡하게 법정에서 해결하기보다 상인 중에 존경받는 사람에게 당사자 둘만 가서 중재받는 길을 주로 택했다. 상인 세계에서는 분쟁 사실이 알려지는 일 자체가 위험하니 당연히 비밀을 지키는 게 원칙이었다.

근대에 국제공법과 사법체계가 성립한 뒤에도 국제거래상인들은 이 방법을 선호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세계은행 산하에 ICSID를 만들어 여기서 이 관행을 흡수하게 되었는데, ICSID에서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했을 때 그 결과에 법적 효력을 갖게 하였다. 그러므로 ICSID를 ISD의 시효로 볼 수도 있으나 엄연히 다른 점이 있다. 본래 ICSID의 판정이 대상국가에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개별 투자 사안마다 그 분쟁 해결의 법적 관할권을 ICSID에 넘긴다는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BIT(양자 간 투자협정)나 FTA에서 ISD 조항이 포함되면 개별 사안마다 명시적인 동의 없이 외국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을 이 중재 절차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ICSID에 속한 한 변호사는 90년대까지 ICSID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였는데 BIT라는 ‘백마 탄 왕자’가 와서 깨워줬다고 말한다.

중재 제도에서 당사자의 동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 중재법이 1966년에 제정되었는 데 아직 널리 이용되지 않는 까닭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중재 절차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ISD는 중재 회부에 대해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 간주 조항을 둔다. 정부는 공공정책은 분쟁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하지만 그조차도 단서 조항을 보면 투자자의 피해가 극심한 경우는 중재 회부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를 어떻게 넣든 포괄적인 사전 동의 조항이 있으면 결국 국가는 중재에 불려가는 수밖에 없다. 투자가가 국가를 중재로 끌어내는 데 필요한 허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협정문에 규정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자체도 중재 절차에서 심사한다. ISD는 국가가 투자자를 규제하는 데 이용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투자자가 일방적으로 국가를 공격하는 제도다.

원래 중재는 국가가 사적 분쟁에 개입하기보다 당사자들 사이의 조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국가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을 사적 분쟁과 같은 절차로 해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제도의 연원은 철저히 사적 영역에 있는데 제도가 적용되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이다. 중재는 결코 재판이 아니다. 법 논리에 의해 판결이 나는 게 아니라 분쟁 당사자인 대상국가와 투자자를 대표하는 변호사 두 명과 심판관 한 명이 모여 시쳇말로 ‘쇼부를 치는 것’이다. 심판관을 선정하는 방식에는 ICSID를 포함해서 다섯 개가 있다. 한미FTA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선택했는데 저마다 절차가 조금씩 다르다. ICSID에는 심판관 목록이 갖춰져 있고 그 중 한 명을 고르는 식인데, 대개 국제거래계의 변호사들이다.

국내법은 여기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고려되는 규범은 단지 국제법상의 일반규칙과 해당 BIT 또는 FTA 협정문뿐인데, 국제법에는 확립된 원칙이 없다는 게 일반원리이므로 세 명의 변호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체코의 노바TV 사건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체코가 투자자에게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런던 판정이 나오고 6개월 뒤 스톡홀름에서는 1억 7천만 불을 배상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이는 체코 1년 의료보험 예산에 해당한다. ISD로 물어야 할 배상금은 국채로 변상할 수 없으며 판정 즉시 현금으로만 갚아야 하는데 체코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징수하여 충당하였다. 만약 배상금을 제대로 물지 않으면 사설 투자평가기관의 국가신인도가 추락할 게 뻔하다.

중재 과정에서 변호사 셋이 고려하는 가치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이다.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서 벌어졌던 중재의 결정문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알려진 ISD는 90년대 후반부터 그 수가 폭증하고 있는데 정확히 몇 건이나 되는지 집계할 수가 없다. 중재 심판은 종국적이므로 차후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제소할 수도 없다.

ISD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간접 수용’이라는 개념도 매우 위험하다. ‘수용’은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취득하면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고, 몰수는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유화는 대규모 몰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간접 수용은 무엇인가? 국가가 직접적으로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아도 재산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 수용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개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거리에서 토스트 가게를 꾸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토스트를 많이 구입하여 장사가 잘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서 신호등을 없애고 지하도를 뚫어서 이용객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면 간접수용에 해당한다.

간접 수용을 참작하면 국가가 산업 정책을 펼칠 여지가 거의 없어진다. 국가가 전략 산업을 선정했다면 여기에 선택되지 않은 외국인 투자 기업이 제 자산을 침해받지 않을 리가 없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개방해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웃기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펼칠 필요도 없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한 번 펼쳐 보자. 자유무역을 하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어떻게 되는가. 비교 우위가 낮은 산업은 도태된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 정부는 한민족은 장보고의 후예니까 잘해낼 수 있다고 한다.

또 오늘날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던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는 추세인데, 미국 택배회사 UPS의 경우 캐나다 정부가 운영하다 민영화한 택배 회사가 예전에 국가 지위에서 누리던 설비 등을 갖고 경쟁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상태이다. 이 사건에서 캐나다 정부가 배상금을 물게 되면 앞으로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는 모두 철저히 시장의 논리에 따라 공급될 터이므로, 수지가 나지 않는 벽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없게 된다.

투자자가 이렇듯 어마하게 넓은 범위에 걸쳐 국가를 중재로 회부할 수 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권리를 지닌 투자자의 범위도 무지하게 넓다. 벡텔이라는 미국 회사가 볼리비아 어느 지역에 상수도 공급을 맡았는데 시장 논리대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1인당 한 달 평균 임금이 100불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수도 요금이 평균 30불이 나오게 됐다. 돈이 생기면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 물값을 내야 할지 고민한다는 농담이 생겼다. 사람들이 빗물을 받아 용수로 쓰기 시작하자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에게 이를 금지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항의하던 사람들을 진압하던 와중에 17명이 죽었다. 계엄이 선포되었는데도 소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볼리비아 정부는 벡텔을 추방했다. 벡텔은 ISD로 볼리비아 정부를 중재 판정소로 불러 내었다.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와 FTA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가 없지만 벨기에와 볼리비아 사이에는 BIT가 맺어져 있다. 벡텔은 벨기에에 유령 회사를 설립했다. 벨기에에서는 법인 설립 요건에 거의 제한이 없다. 그 유령회사가 벨기에 투자자의 이름으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받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협정문 어디에도 투자자의 개념에 최대 주주라는 말이 없다. 소액 주주는 물론 기업의 채권단까지 투자자에 해당한다.

정부 관료들이 ISD를 반드시 한미FTA에 포함하려는 의도는 아마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에 쐐기를 박아 다시는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데 있어 보인다. 투자자가 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금융허브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 같은데 국민경제 순환 구조가 붕괴한 상태에서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베네룩스 같은 모델 도입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대선 후보에 나선 사람들이 경제 성장률 7%를 언급한다. 작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4.9%였다. OECD 국가 중에 높은 편이다. 대기업은 이윤으로 투자와 고용을 하기는커녕 자사주 매각을 통해 소유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 경제와 사회 영역을 잇는 혈맥을 다시 세우려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한미FTA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이 비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민 가는 일에 대한 판단과 유사한데 다른 나라로 건너가서 일이 잘 풀릴지, 잘 안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그 불확실한 미래를 감싼 안개에 대한 이미지를 보고 결정을 내린다. 미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찬성 여론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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執銃

삼 년 만에 소총을 쥐면서 이걸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였다. 정상인이라면 반드시 병영 생활을 겪어야만 하는 사회에서 군인의 상징을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수치스러웠다. 아무도 계급장 없는 전투복을 입은 이들을 타박하지는 않았으나 예비역 이병이라는 정체성은 병장 딱지를 단 사람들 가운데서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였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심적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립적 인격이 될 수 없었다.

사격은 마지막 날에 있었고 그전까지 조롱거리가 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틀째 저녁에는 조교가 총 쏘는 게 내키지 않는 사람은 빼준다면서 의향을 물었다. 내무실 문 앞 명단에는 보충역 출신으로 추측되는 인원이 몇 있었으나 아무도 그 자리에서 열외의 대상이 되겠다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동원 사단의 사격 교장은 열악하였다. 자동 표적은커녕 에이포 용지 한 장에 인쇄된 표적 네 개에 영점사격과 기록사격을 모두 하여야 했다. 사로로 올라가기 직전에 부사관 한 명이 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나오라고 하였다. 몇 사람이 걸어나가더니 양지에 발을 뻗고 앉았다. 어차피 앞으로 몇 번 더 쏠 일이 있는데 매번 비참한 기분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면제해 줄 수 있으면서, 왜 신병훈련소에서는 집총을 거부할 사람을 입소 때부터 찾아내려 했을까.

두 번째 조에 편성된 덕에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한 시간이 짧았다. 첫 번째 조였다면 앞 조가 사격하는 광경을 볼 수 없어 도리어 낭패였을 텐데 운이 참 좋았다. 먼저 총 쏘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 흐릿하게 장전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탄창은 한 사람당 두 번 지급되었는데 먼저 주는 세 발로는 영점을 맞췄고 뒤의 일곱 발이 기록사격용이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고 좋지 않은 두 눈으로 대충 조준해서 구령에 맞춰 방아쇠를 당겼다. 표적을 확인하니 뜻밖에 탄착군이 표적 위에 정확하게 형성되었다. 옆 사람이 잘 들어갔다고 칭찬해주니 홀가분해져, 조교에게 가늠쇠와 가늠자를 조절하지 않고 그냥 쏘겠다고 하였다.

문제는 다음 탄창을 끼워 넣고 일어났다. 장전이 되지 않았다. 남들 다 쏘는 사이 오른발을 들고 있으니 대위 한 명이 와서 손 봐 주었다. 그리고 혼자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총을 쏘았다. 무리로부터 일탈하였다는 느낌이 다시 강하게 들면서 몸이 살짝 떨려오기 시작했고 총알은 세 발만 과녁에 적중되었다.

누군가 지금 여기 조승희 같은 인간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농담을 하였다. 용감한 장교가 나서서 그를 사살할까.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난사하는 탓에 희생자가 더 늘어날까. 큰 탈 없이 훈련을 마치고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 계단을 밟아 내려오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와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비교해보았다. 초점을 정확히 잡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순간에 호흡을 멈춰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

총이라는 병기는 나처럼 근육이 잘 발달하지 못한 인간에게도 간편하게 살상 능력을 부여한다. 무기를 갖추고 휘두를 힘이 없는 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던 때에 태어났더라면 노예로 일생을 마쳤을 테니 모든 사람에게 군역을 지우는 세월에 태어나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도 직접 창과 칼을 들고 목숨을 내놓았던 시대는 차라리 낭만적이었다. 왜 생명을 잃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집단까지 살육하는 시절에 살다 보니, 도리어 육체와 육체가 부딪히던 전장을 동경하게 된다. 첨단 무기의 사진과 수치를 나열해 놓고 떠벌이는 무리의 심성을 긍정하지 못하고, 총 들기를 거부하다 감옥에 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려는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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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才 詩人

그 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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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기념 서울청소년 백일장 대상작. 나는 시를 몰라서 얼마나 빼어난지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이 없어서일까. 정양은 여수에서 나서 여덟 살까지 광주에서 자라며 들었던 얘기가 그대로 시가 되었다고 한다. 금남로와 망월동을 걸으며 그래도 가슴이 약간은 뻐근해졌던 적은 있었지만, 역시 전라도 사투리가 친숙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한계일까.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이는 관련 기사가 어쩐지 떨떠름해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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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問答

1.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 언제부터인가 자발적으로 이런 문답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고어핀드님의 지목을 알고도 반응하지 않으면 무례한 일이겠지요. 이 문답을 처음 만든 사람은 장르 소설과 만화를 즐기는 듯 합니다.

2. 독서 좋아하시는지요?

- 제 일과입니다.

3.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 할 줄 아는 게 그밖에 딱히 없어서요.

4.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 2006년 12월 3주부터 읽은 책을 기록해 둔 게 있군요.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법
법학입문(이상돈)
웃음의 나라
법철학의 길잡이
누군가
대답은 필요 없어
법철학강의(황산덕)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현대 법철학의 흐름
마주치다 눈뜨다
유시민을 만나다
7인 7색
감독, 열정을 말하다
금지를 금지하라
오늘의 세계적 가치
과학의 즐거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뛰어난 사진을 만드는 비결
이름 없는 독
스콧 니어링 자서전
남한산성
반 고흐 - 태양의 화가
피카소 - 성스러운 어릿광대
램브란트 - 빛과 혼의 화가
마티스 - 원색의 마술사
고갱 - 고귀한 야만인
로댕 - 신의 손을 가진 인간
세잔 -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미술
모네 - 순간에서 영원으로
툴루즈 로트레크 - 밤의 빛을 사랑한 화가
르누아르 - 빛과 색채의 조형화가
고야 - 황금과 피의 화가
드가 -무희의 화가
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베이컨 - 회화의 괴물
벨라스케스 -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조화와 비례의 미학
보나르 - 색채는 행동한다
티치아노 - 자연보다 더욱 강한 예술
샤갈 - 몽상의 은유
달리 -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수험서와 만화, 잡지는 제외되었습니다.

5.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위 목록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최근에는 딱딱한 책을 거의 못 읽었고, 대화집이나 시평집 정도나 읽고 있군요. 아마도 2~3년 동안은 그러할 듯 합니다.

6.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종이라는 물질에 문자라는 기호가 인쇄된 사물.

7.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 한국에서 독서는 소설을 취미로 읽는 일로 통용되는데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라고 여깁니다.

8.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공부하라는 소리에 진저리가 나지 않으면 이상한 사회니, 그런 공부의 도구에 호감을 가지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겠죠.

9. 책을 하나만 추천하시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 까뮈의 시지프 신화.

10.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춘기로 통칭되는 시기에 읽었던 탓인지 아직까지 제 삶의 나침반입니다.

11.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 책은 특별히 고상한 물건이 아닙니다.

12.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 제가 가진 자료로 통계를 내어보니 문학의 비중이 11.36%입니다.

13.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국 문단에서 평론의 대상이 되는 작품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14.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아뇨.

15.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 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 14번과 통합되었어도 좋을 질문이군요.

16.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 작가라 하면 주로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에 국한되겠군요. 작년부터 제가 올 해 읽은 소설의 작가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7.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하시죠?

- 김 선배님, 일전에 말씀하신 치정 소설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미 여사님은 스기무라를 홈즈나 뤼팽에 견줄만한 탐정으로 성장시켜 주세요, 하하.

18.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 정문금추님, knulp님, 술이부작님께서 혹시 보시다면 어떤 답을 주실지 궁금하군요. pass 형, 라미아, Mari도 받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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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人

엊그제 헌법 기출 문제집을 고르러 교내 서점에 들렀다. 서가 앞에 서서 책들을 비교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파이낸싱이니 매니지먼트니 좀 덜 꼬부라진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공인회계사 수험서에 대해 초심자에게 조언을 주려는 듯 촌평을 늘어 놓았다. 옆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면서 과목이 하나씩 바뀌는 것 같더니 헌법과 민법 따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얘기를 쏟아냈다. “헌법은 권영성, 김철수, 허영 이 세 사람이 태두지. 민법은 김형배랑 김준호 보고 곽윤직으로 마무리하면 돼. 민사소송, 이건 우리 대법관 지내신 이시윤 교수님 것 보면 되고. 형법은 보자, 고대 교수님들 책 괜찮지.” 그는 책의 저자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필상 전 총장이 콜럼비아 대학의 망신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상돈 교수가 수학한 학교를 기억하지 못하더니 책 한 권을 펼쳐 경력을 확인하고 훌륭한 교수라 칭하기도 하였다. 시험에서 판례가 왜 중요한지, 실무에서 일본 판례가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지도 설명했다. 삼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부슬부슬한 정장을 차려입고 한쪽 어깨에 서류 가방을 메고 있었다. 혹시 눈이 마주칠까 저어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에게는 일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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