組織生活
1.
어쩌다 싸이월드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들의 졸업 사진을 보게 된다. 학과 안에서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같이 찍자고 연락 온 동기도 없었고, 낯 모르는 인간 수백 명의 면상 속에 얼굴을 나란히 올려놓고 싶지도 않다.
초면에 서울대 또는 의대로 진학하지 않았거나 못한 이유를 대화 주제로 삼는 법학도들 앞에서, 법학은 정의를 실현하는 학문이라는 공허한 말조차 부끄러웠다. 교양 수업은 고등학교 수업보다 재미가 없었고, 학생운동가들이 꾸리는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다 보니 한 학기가 지났다. 당연한 듯이 여름에 농촌으로 갔고, 달력에 따라 정파의 조직원이 되는 과정을 착실하게 밟는 모습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철거촌 투쟁을 둘러싼 종파주의를 목격하였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운동이 2학기의 중점 투쟁 목표라고 같이 활동을 하자던 선배의 권유를 밀치고 개혁국민정당에 갔다. 최장집이 말하는 정당 정치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운동권과 비운동권이라는 헛된 구도를 넘어서는 총학생회를 만들어 보자는 말을 했고, 열 명도 되지 않는 운동원들이 힘껏 애써 봤지만 천 장의 지지표를 얻는데 그쳤다. 억지로 투표율 50%를 넘기는 시절에 당선자는 평소에 맺은 친분을 토대로 기표소로 후배들을 불러 모으는 능력에 따라 결정될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대학생 유권자 운동에도 손을 댔고,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지 않아 기뻤던 시기는 짧았다. 한 발 담갔던 정파가 자진 해산하던 즘에 유시민은 개혁당을 폭파시켰다. 알고 싶다는 욕구라도 채워보자 싶어 손 닿는 세미나에 닥치는 대로 참가했다. 월요일은 한국 현대사, 화요일은 90년대 운동권 문학, 수요일은 시민사회론, 목요일은 자율주의, 금요일은 공산당 선언 강독, 토요일은 로마사 논고, 일요일은 만들어진 고대…, 이런 식이었다. 정대화나 한홍구가 꾸리는 단체에 한 번씩 기웃거리기도 했다.
총론 과목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전공과목 학습은 불가능했고, 그렇게 두 학기를 더 다니다 보충역 근무를 시작했다. 퇴근하고 미뤄둔 법학을 처음부터 공부해 볼 작정이었으나 MMORPG 두 개를 하면서 일본 우익 작가의 책들을 보다 보니 소집해제였다. 법학 공부 방법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듣는 후사법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학과 공부만 한 셈이었는데도 A 이상의 평점 평균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시험 준비를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2.
돌이켜 보면, 숱한 조직의 문턱에 발을 딛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그 안에서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를 거부했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 중에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사실 나는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성격이 못되어서, 특정한 일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리 속에서 대화를 잘 나누지 못한다. 특히 뒤풀이 자리에서 그러했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서 여담을 즐기는 자리에서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혼자 조용히 지내는 일을 즐기다 보니 사람과 만나는 일이 주는 긴장이 지나치면 맡은 일도 내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런 주제에 어디에서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만 따르는 일에 불만을 품었고, 다른 사람이 맡은 부분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했다. 조직 안에서 성과를 이루는 일에도, 인간관계를 쌓는 일에도 실패한 것이다. 일만 잔뜩 벌여 놓고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셈인데, 지나치게 오지랖만 넓힐 욕심이 과했던 탓이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면 과연 제대로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을지 걱정도 조금 된다.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 안에서조차 속으로 투덜거리기만 하며 활발히 활동하지 못했는데 먹고살려고 들어가는 조직에서는 더 하지 않을까. 물론 생계가 달렸으니 그렇게 철없이 행동할 수도 없겠지마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그렇게 많은 곳을 엿보기보다는 두세 조직에 집중했어야 했다. 학과 안에서는 법률운동을 하는 학회에 가입했어야 했고, 과외를 하면서 다른 자원 활동을 찾기보다 본래 하고 싶었던 야학 동아리에 들었어야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시간을 쪼개어 정토회 불교 대학에 나가거나 공익 변호사 집단 공감에서 인턴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에만 충실했더라면 좀 더 깊은 성취를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경험 없는 후회와 반성 없는 발전이 있을 수는 없다. 살면서 언제 다시 이십대 초반처럼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 놓는 일도 어쩔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