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明
시력이 더 나빠지는 걸 느낀다. 얼굴 분간이 예전보다 힘들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낯 모르는 이를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일부러 모른 체 지나갔다고 느끼게 한 사람도 있을 법하다. 키가 자라지 않은지 곧 10년인데 왜 자꾸 근시가 심해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러다 눈이 멀어 버리는 상상을 하며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도 근시로 맹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는 소리를 듣고 안도했지만. 새로 안경을 맞출까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는데, 독서에 지장은 없고 어차피 원경을 또렷이 보려면 도수를 많이 높여야 할 테니 그만두었다. 안경알 값만 십 수만 원에 육박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조영남 안경을 끼고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안경 모양새도 많이 예뻐졌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내 시력에 필요한 렌즈는 플라스틱 압축이 되지 않아 유리알을 써야 했으니 안경 제작 기술도 계속 발달하는가보다.
지난주는 선택과목으로 고를 법철학을 공부했다. 올해 들어간 시험장 고사실에서 국제법, 경제법, 노동법을 고르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오가며 황산덕 저 법철학을 대충 통독한 상태였는데 25문제 중에서 15문제를 맞췄다. 이동희 저 법철학 요해를 한 번 읽고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기출 문제를 풀어보니 180문제 중 27개를 틀렸다. 기출문제만 확인해도 실전에서 오답 낼 일이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 윤리에서 서양 철학을 배울 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뼈대로 학자들을 분류하면 대충 얼개가 파악되었듯이, 문제 되는 학자가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 중 어떤 경향에 가까운지만 대충 파악해도 객관식 지문 속에서 정답을 알아낼 수 있다.
단답형 지식을 익히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 분야를 처음 공부할 때는 꽤 효율이 좋다. 법철학 교과서를 세 권 정도 읽으면서도 줄기가 잡히지 않았는데 이제 법사상사의 흐름이 대충 그려진다. 근대 학문으로서 법학은 확실히 법실증주의와 함께 탄생하였다. 마키아벨리가 도덕으로부터 정치를 분리했듯 법실증주의는 도덕과 정치로부터 법을 분리했다. 개념법학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은 판덱텐 법학이 자리를 잡던 시절부터 존재하였지만, 법률 삼단논법이라는 고전적 법학방법론을 정초하면서 법학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 업적이다. 법실증주의가 등장하기 전 법철학이라고 말해지는 내용은 죄다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황산덕이 켈젠의 순수법학을 그리 찬양한 까닭이 이제 짐작이 간다. 물론 그들이 주장한 바는 이미 극복되었지만, 자연법론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법실증주의가 없었다면 법학이 법학으로서 존립할 수 있었을까.
전공 학문의 사상사를 훑고 나니 그토록 싫어하던 전공에 대해서도 애정이 생겨나는 기분이 든다. 법학을 밥학에 머물지 않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근대 사회와 법을 연관시켜 연구한 학자는 베버와 웅거밖에 없었다. 기초법학 개괄서를 훑고 나면 이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