米國

한 게시판에 최장집과 리영희가 우파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그럼 스탈린이랑 김일성 빼면 전부 우파냐는 반문을 받았다. 좌파와 우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밝혀달라고 답했더니, 며칠이 지나고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사회주의 붕괴 전에는 좌우 기준이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였지만, 이제 공동체주의와 평등과 국가를 중시하면 좌파고 개인주의와 자유와 시장을 중시하면 우파라는 요지였다. 참으로 미국적인 입장이다. 그 잣대로 평가하면 신자유주의자를 제외하면 전부 좌파다. 미국 민주당을 좌파라고 하기도 했으니 일관된 논지를 펼치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렇게 얻은 개념을 몰역사적으로 한국 상황에 그대로 대입하는 수준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박사까지 딴 사람들이 내뱉는 헛헛한 소리를 보며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건지 정말로 저런 말들을 진실하게 믿는지 궁금했는데,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모범생답게 개념은 어느 정도 배워서 머릿속에 집어넣지만, 비판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모자란 집단. 저치들의 내면에는 조금도 어긋나는 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거짓말을 거듭하다 나중에는 제 거짓말을 거짓말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흡사한 꼴이다.

홍기빈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따위의 책이 하버드생이 필수적으로 읽는 도서라는 점은 미국 지성계의 위기를 드러내는 징후 중 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예전에 박노자 블로그에서 저런 식의 이념관을 가진, 미국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한다는 대학원생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미국으로 학문의 중심축이 넘어갔는지 의아하다. 단지 정치경제적인 힘 때문만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데. 미국 지성사를 한 번 훑어보면 대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수험생 주제에 2007년 동안 읽은 책이 113권이었다. 물론 그 중 52권은 갈리마르 데쿠베르트 총서였고 19권은 소설이었다. 나머지도 법학 서적 12권을 제외하면 읽는 데 품이 들어가는 책은 아니었고. 그나마 올 한 해 붙인 마음에 드는 독서 습관은 자기 전에 데쿠베르트 총서 중 한 券의 한 章을 읽고 잤다는 점이다. 읽는 책 권수를 늘려보려는 방편이었는데, 이 시리즈를 다 읽고 나면 살림 지식총서 같은 다른 문고판 총서류 중 호기심이 동하는 걸 일주일에 한 권 골라 읽을 작정이다. 다만, 두 달만 좀 참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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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특검을 수용한 속셈

일단 특별검찰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성공한 주가조작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르고. 설령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공소를 제기한다 해도, 취임을 막을 수는 없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당선무효 판결은 어디까지나 선거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이 장로님은 예전에 이미 겪어보신 바 있지. 다른 범죄 때문에 피선거권을 상실하여 당선의 효력이 상실될 수도 있지만, 취임 전에 종국판결이 내려질 리 만무하다.

대통령 임기 개시일이 되는 순간 불소추특권을 누리게 되므로 기소된 상태라 해도 사실상 제대로 된 수사가 불가능하다. 만약 헌법 84조를 엄격하게 문리 그대로 해석해서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만 안 받을 뿐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은 중지되지 않는다고 치자. 대법관 나리들이 한 번 용트림을 내뿜으셔서 자격정지를 병과하실 수 있을까. 국회의원 중에 이렇게 배지 잃어버린 사람이 있기는 했다만, 형법 43조 2항으로 대통령직까지 날릴 수 있다면 우와…. 아무리 생각해도 특검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삼성 특검이 이건희를 기소할 확률보다 낮아 보인다.

반대로 대통령 재직 중에 재판이 중지된다면 미래의 대통령님께서는 일반사면을 내리시는 건 아닐까? 일반사면은 죄를 범한 자를 상대로 형을 선고받았으면 그 효력을 소멸시키고 아직 받지 않았으면 공소권을 소멸시키니, 자기를 사면하고 나면 퇴직해도 법원은 면소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되어 있지 않으므로 못할 이유는 없다. 국회 동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정권심판 분위기가 몇 달 더 간다면 한나라당의 압승일 테고. 2004년처럼 물갈이되기 전에 탄핵 소추라도 한번 해보고 싶겠지만 의석 수가 모자라니 원천 불가. 게다가 탄핵이 의결된다 해도 취임 전의 일이 탄핵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탄핵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 있다. 하기야 헌재 판결은 자신을 기속하지 않으니, 요즘 대한민국 법대생들이 헌법 배울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판결 내리실 때의 기개라면 못 뒤집으리라는 법도 없다만.

이래저래 경제사범을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 이 나라 공법학자들 머리도 참 지끈지끈 거리겠다. 비천한 1차생은 덕분에 난삽한 선거법 관련 규정을 입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혹시 내년에 한 문제 출제되면 답례로 총선 때 우리 동네 지역구에 노동당이랑 사회당 후보 없을 경우 당신 소속 정당 후보한테 한 표 줄게. 누구처럼 탈당하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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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圖書館을 나오면서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사생활’ 식으로 말하면 요즘 데카르트처럼 일어나고 칸트처럼 밥 먹고 있다. 늦게 일어나서 돌아올 불이익이 눈앞에 있지 않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휴대전화가 없으니 밥 먹는 사람들과 반드시 정해진 시각에 만나게 된다.

성격이 조금씩 예민해진다. 아흐레 전, 안 그래도 2학기 수시 고사장으로 써야 한다고 모든 열람실을 하루 동안 못 쓴다고 해서 좀 울적한 상태였는데, 열람실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몰상식한 놈에게 아량을 베풀지 못하고 한마디 해서 쫓아냈다. 경제신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참았을지 모른다. 저런 신문을 보는 인간은 존중할 수가 없다. 논조를 떠나 저기서만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있어서 봐야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리도리. 생각 없이 저런 걸 곁에 두면 개념이 뒤집히기 쉽다. 삼성의 증뢰행위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얘기를 거침없이 써대는, 투기와 투자를 구별 못 하는 理財新聞들을 보고 있노라면 채만식의 ‘치숙’이 자꾸 떠오른다.

“다른 게 무어요? 경제는, 돈 모으는 것이고 그러니까 경제학이면 돈 모으는 학문이지요.”
“아니란다. 혹시 이재학(理財學)이라면 돈 모으는 학문이라고 해도 근리(近理)할지 모르지만 경제학은 그런 게 아니란다.”

하기야 열람실을 하루 못 쓰게 한다고 분개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학생에게 옹졸하게 욕을 하는 나는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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