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接 民主主義의 그림자

어느 대학교에 원서를 넣으면서 첨부한 자기소개서에는 돌이켜보면 심히 낯부끄러운 책 다섯 권을 적어 놓았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고등학생 권장도서 목록에 쑤셔 넣은 교수에게 저주 있으라! 책 몇 권으로 바뀐 삶은 얄팍하기 그지 없겠지만, 지금 내 인생의 책을 고르라면 딱 두 권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한 권이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사회학』이다.

로베르트 미헬스는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민주당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활동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과두제의 철칙을 말한다. 근대에 탄생한 어떤 조직도 관료제로 말미암아 이 철칙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정당조차 예외는 아니다. 정당 이론을 펼친 학자 가운데 사회주의 정당에 직접 투신했던 유일한 사람인 미헬스는 대중이 지도자에 이끌리는 경향을 분석하며 대의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민중이 전력을 다하여 권력을 교체한 뒤 만족해하는 것은 가치 “희극”에 가깝다. 그들은 또다시 자기들이 뽑은 지도자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며, 또다시 “잘못 뽑았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주기의 선거를 위해 이를 갈며 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는 ‘국가지도자의 아이러니’다.

대의제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오늘날 한국 상황에서, 역시 대의제는 직접 민주주의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대의제를 부정한 루소의 일반의지 이론을 채택한 결과로 자코뱅 독재가 나타났던 과거를. 2월 혁명의 열매를 삼켰던 보나파르트의 조카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을 잠재운 사나이를.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거꾸러졌던 과정을. 대중의 숭배욕구는 끊임없이 지도자를 소환한다.

21세기에 한국 대중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단에 열광했고, 장갑차에 치인 소녀를 추모했고, 탄핵당한 대통령을 지켜냈고, 황우석과 D-War를 옹호했으며, 미국 쇠고기 수입 협의에 분노한다. 희대의 부동산 임대업자가 물러난 자리에는 독재자의 망령을 팔아먹는 선거의 성처녀가 등극하게 된다. 나는 다시 되뇐다. 인민을 기만하는 파시스트보다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가 낫다고. 포퓰리스트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의 틀 안에 갇혀 있지만, 대중의 직접 동의를 통해 출현하는 파시스트는 대의제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최장집이 노무현 정부를 지켜보며 권력 분립론이 단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던데, 나는 요즘 동일성 민주주의론에 대한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의제를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배부른 소리라고 간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이론은 역사에 기반을 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를 지배하지 않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들을 지배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역사가 기다릴까. 정당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대의제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내놓은 미헬스는 말년에 무솔리니 밑에서 봉사하다 죽었다.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직접 민주주의도 지선한 가치가 결코 아니다. 불발에 그쳤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주민소환제를 작동시킨 원인은 무엇이었나? 혐오 시설 건설로 내려갈 집값 걱정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제도에 대한 발랄한 상상보다, 인민과 고통을 함께하되 인민의 욕망을 넘어서서 죄수의 딜레마를 깨뜨릴 희망의 윤리학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절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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