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金期

손민한과 이대호를 제외하면 이름이라도 아는 선수 하나 없는 팀이 페넌트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반기는 나를 발견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침울해졌다. 세상을 세로로 나누는 감정에 기반을 둔 대립 구도를 두고 즐거워하다니 망측한 일이다. 더는 어떤 국가대항 운동경기 중계를 보아도 흥겨워하지 않게 되어 웬만큼 수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간혹 내 입에서 삐져나오는 방언의 흔적처럼, 이 지저분한 사고방식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태제과의 상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꼬마는 이제 서울 생활 중에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가끔 뻔뻔하게 느껴진다. 어떤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 본래 말투를 버리는데, 저들은 저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해 본적을 바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저렸다. 제 말씨와 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현존하는 대한민국. 옛날 강준만이 뱉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발언을 이제는 아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다고, 감히 말해도 괜찮을지….

언제부터인가 동향 출신이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이 부러웠다. 그들이 그 팀을 응원하는 데는 연고가 아닌 다른 까닭이 있을 테니. 세상을 가로로 나누는 기준에 기원을 둔 스포츠 팀이 있다면 나도 관심을 쏟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스날처럼 노동조합에 연원을 둔 팀이 없다. 지역감정이라 해도 FC 바르셀로나를 성원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심정은 납득이 된다. 해태 타이거즈가 승승장구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호남 사람들도 비슷한 심사였을까.

도대체 왜 나는 ’우리’가 이겼다는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걸까. 편한 마음으로 롯데를 아끼던 시기를 되새겨 보니 짐작이 간다. 한국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92년은 걱정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삼당합당이야 어쨌든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노동자 실질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도산하지 않은 신발제조회사에 근무하면서, 공장에 위장취업한 학생운동가를 적발하기도 했던 촉망받는 중간간부였다.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몰락할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견실한 중소기업의 이사 정도까지 지위가 올라갔을 테고, 어머니는 허리둘레 24인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삶을 누리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진정으로 ‘달콤한 가정’이라는 중간계급의 꿈이 허투루 들리던 때가 아니었다.

욕구를 대부분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보였던 호시절을 호출했나 보다. 잠실 야구장에 한 번쯤 찾아 가볼까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근심 없던 유년을 추억하는 짓은 정신을 퇴행시킬 뿐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과거를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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