呪文
우연한 계기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었다.
1부 ‘河口’의 배경인 江津은 낙동강 하구에 자리 잡은 마을인데 이곳에 흘러들어온 주인공의 형은 골재를 캐다 판다. 현재 부산광역시에서 낙동강 서쪽은 강서구이고, 강에서 바로 동쪽에 사하구, 사상구, 북구가 최하류에서부터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沙上區에서 13년을 살았던 탓인지, 모래 장사꾼 얘기가 새삼스러웠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 삼아 권력의 단물을 맛본 인간들에 대한 예언 같은 주인공의 자기검토는 신랄하다.
기껏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소년시절의 충동적인 모험의 연장이며, 추구하는 것 또한 영광과 승리의 동참자로서 나누게 될 자랑스러운 기억 따위나 아닐까. 막연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지성의 정신적인 자위행위거나 우리도 언젠가 빼앗기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노라는, 장차 혜택받는 계층에 끼어들었을 때의 변명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돈 주고 산 책이 아니다 보니 다른 사람이 강조해 놓은 부분도 보게 되었다.
다만 싫은 것은 지성인 내지 대학생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획일주의나 정의와 양심과 용기는 참여하는 쪽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식의 흑백논리요. 사회의 의식도 문화의 일부일진대, 그 다양성은 상호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오. 거리로 뛰어나가 기성세대의 불의와 부패를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남아 학문적 고구(考究)나 예술적 연마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뜻이오.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선택하는 의식의 순수함과 실천의 성실함일 거요…….
1981년, 부채의식에 시달렸을 서생들에게 이런 문장은 어떤 위무를 제공했을까. 어쨌거나 나는 진정성을 운운하는 글을 읽지 않듯이 순수와 성실을 떠드는 자를 믿지 않는다. 그러한 가치는 몸으로 드러날 뿐이다. 가끔 언론에 실리는 이문열의 말을 볼 때마다 마루야마 겐지의 삶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썼다면서 인용되는 글귀는 꽤 자극적이다. 실은 이 문장에 홀려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입시를 저런 태도로 대하였다. 아직도 수험생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빙충맞지만, 나도 이제 나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