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009년 2월 20일 아트레온토즈에서 열린 <<인문학 스터디>> 특별강연 중 강유원이 맡은 전반부를 정리한 글이다. 책을 활용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었다.
사람들이 어떤 사태에 대해 말할 때 이미 저마다 지닌 신념 체계에 입각한 경우가 많다. 그보다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인문학은 어떤 사태에 부딪혔을 때 그 사태를 해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무념무상의 태도로 바라보았을 때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적 균형감각을 갖추려면 이 책에 소개된 영역들에 대한 지도를 그려야 한다. 이 책에는 최신의 이론이 없지만, 단어 하나조차 허술하게 쓰인 부분이 없다. 예컨대 36쪽을 보면 <<일리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았다.
더욱이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의 사령관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령관은 아가멤논이다. 아킬레우스는 무기를 다루는 데에서는 분명 가장 뛰어나지만 여러 작은 장군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서구 문학의 기원이 최고 지배자가 아닌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됨으로써, 서구 문명은 모범적인 황제들이나 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고대 또는 초창기의 문학을 보유한 다른 문명과 구별된다.
우리는 또한 <<일리아스>>에서 서구 사상의 또 다른 독특한 측면을 발견한다. 그것은 적, 특히 전체 서사시에서 가장 귀족적인 인물이라 할 용감한 트로이인 헥토르를 동정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애처롭도록 가정적이고 행복한 장면들이 최후를 맞는 도시 트로이에서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이 불타고 난도질될 것을 깨닫는 순간, 고대 그리스인처럼 우리 역시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시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가 서사시의 첫 행이다. 위대한 전사의 용기이자 그의 영웅적 행동의 뿌리인 이 분노는 결국 영웅이 파멸하는 원인임이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일리아스>>의 특징인 개인주의, 적에 대한 배려, 한 인간의 장점이 그 인간의 단점이 된다는 모순을 이보다 간결하게 잘 정리한 문건이 없다. 이런 식으로 40쪽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를, 63쪽에서는 희랍철학이 무엇을 다루는지, 74쪽에서는 지성사와 철학사의 과제에 대해 적어 놓았다. 책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인문학에서 다루는 영역 대부분에 관한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본문을 충실하게 습득한 다음에는 도서 목록을 참조하면 된다. 도서 목록은 크게 원전과 참고도서로 나뉘고, 참고도서는 다시 ①해당 영역 전체를 개괄하는 입문서, ②해당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책, ③세부적인 주제에 관한 입문서와 ④연구서로 구별된다. 참고도서의 경우 ①개괄 입문서, ②개괄 역사책, ③세부주제 입문서, ④세부주제 연구서로 넘어갈 때마다 짧은 밑줄로 구별해 두었다. 종류별로 읽기 쉬운 책부터 차례로 나열하였으니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 개괄 입문서와 역사책은 기본적인 내용이고, 세부주제 입문서와 연구서는 전문적인 내용이다.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세부주제 연구서까지 모두 읽어야겠지만, 다른 영역 공부를 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내용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다.
한국적인 것에 대해 연구해보려면 이 책에서 다룬 주제를 15년 정도 걸쳐 모두 공부해봐야 한다. 세간에는 차이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이나 정통에 대한 까닭 없는 반항이 만연해 있지만, 최신이 최선은 아니다. 몸으로 하는 것은 단계를 건너뛰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데, 정신적인 것은 그럴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정통에 대한 추구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