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講義

다섯 시에 비교법입문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세 시부터 시작한 최장집의 마지막 학부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 큰 강당이 빼곡하게 찰 만큼 사람이 많았던 탓에 강의 자료를 챙기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 잠깐 얻어 보았는데, 자신이 직접 설명한 학문적 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 관념론에 대한 언급이 의외였다. 또 자신은 실질적 민주주의론자가 아니라는 언급도 눈에 띄었다.

결론에서 한국 대학은 외형적인 면은 서구 대학과 비견할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영혼이 없다고 비판했다.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이 꼴이라 사회 전체가 낙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개강, 휴강, 종강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학부 시절을 회상하면서 요즘 학부생들에게 차마 무엇인가를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다만 영어 말고 유럽어 하나, 동아시아어 하나를 더 익혀두라는 정도. 언젠가 독일어와 일본어를 독해 가능한 수준까지 익혀 보아야겠다는 결심이 강화되었다. 결국 좋은 정당과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장래에 법학에서 절차주의가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예측과 호응 되는 측면이 많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학자가 될 수 있다면, 절차주의에서 자본과 권력이 절차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데.

예전 세미나 모임 사람들을 만나 밥과 술을 먹고 귀가했다. 또래 중에 아직도 학부생인 놈은 이제 나밖에 없는 듯. 한 친구는 프레시안 기자가 되었다고 하고, 한 선배는 mbn에 취직했다고 한다. 곧 NYU로 나간다는 선배 소식도 들었고. 그러고 보면 거기서 알게 된 어떤 선배가 모 일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다른 경로를 통해 최근에 듣기도 했다. 그건 좀 충격이었다. 예전에 거기 입사했다고 들은 선배와는 달리, 당 활동에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는데.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사실과 사건이 개입했겠지.

오랜만에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난 덕인지,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착상이 떠올랐다. 근대민법의 근본원칙은 인격 동등, 소유권 절대, 계약 자유, 과실 책임으로 정리된다. 이 원칙이 각각 무엇을 타파하려고 등장했는지 파악해야 개념이 쉽게 잡힌다. 근대 자연법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법적으로 고민한 끝에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인격이 동등하다는 의미는 독자적인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던 노예나 농노 제도를 철폐한다는 것이고, 소유권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재산에 붙어 있던 각종 관습적인 권리를 일소한다는 것이다. 근대법은 길드 등에 얽매여 있었던 상인에게 계약을 자유롭게 맺을 수 있게끔 하였고, 이제 개인은 자기가 잘못한 만큼만 책임질 뿐 연좌제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좋은 말로 포장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시민 계급을 위한 원칙이다. 부르주아를 번역하면 시민이고, 시민법은 유산계급에 적용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지 투표권도 없는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고용에 관한 규정이 단순하기 그지없고,  신분제 폐지도 공장 노동자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일종의 이념형이다. 실제로 이 원칙들이 자본주의 발달에 얼마나 기여하였을까?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자산 보유 형태가 이미 유사하였다. 지주가 자본가의 적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시절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인가? 또 장하준은 자유방임주의가 자본주의 성장에 필수적이기는커녕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자유무역이 영국에서 실제 정책으로 펼쳐지기 바로 전까지 구빈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을 통하여 한반도에 근대법이 계수되면서 각각의 원칙들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조선의 신분 제도 폐지는 근대법 계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의용민법 시행으로 사라진 조선의 관습권은 무엇이며,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과실책임의 원칙은 얼마나 엄격하게 준수되었는가? 대한민국 성립 후 이 원칙들의 작동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전통 지주 계급은 근대법 시행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였으며, 한국에서 자본 축적에 근대법 원칙들은 이바지한 바가 있는가?

경제이념으로서 자유주의가 후대에  강조된 측면이 강하다면, 법이념으로서 자유주의에도 비슷한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유적 자유주의 아래 다시 소유권 절대를 주장하는 입장의 기반을 크게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저작권 침해 행위를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하여 마냥 강력하게 규율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도 찾을 수 있을 테고.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P2P나 웹 하드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려 드는 족속의 심리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밑바탕에는 호혜의 원리와 인정 욕구가 존재한다. 오늘날 많은 임금노동자가 영세자본가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소유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 그런데 이제부터는 지하철에서도 사례연습집을 읽을 계획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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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權勢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딱 한 달이 지났다. 팔십 대 중반에 몸소 경운기를 몰다 뒤에서 승용차가 들이박는 바람에 갈비뼈가 몇 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담당 의사가 회복 속도가 젊은이 수준이라고 감탄했을 만큼 강건하셨지만 아흔셋이 고비였다.

오 년 전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등지자 혼자 식사를 차려 드실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요양원에 가셔야 했다. 장성한 아들은 여섯이었지만 아무도 모시고 살 형편이 못 되었다. 말이 요양원이지 개인이 가정집을 고쳐서 노인 몇 분에게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않고 말없이 TV만 보며 소일하는 환경 속에서 육체는 빠르게 쇠약해졌으리라.

족보에만 오른 이름에 들어간 아홉 九 한 글자를 빼면 할아버지는 내게 개인적인 기억을 남기지 않으셨다. 한자 독해 능력으로 봐서 약간의 교육은 받으셨으리라 짐작할 뿐, 조부의 삶이 어떠했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다. 아마도 내 또래는 대체로 조부모와 단절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식을 많이 낳은 마지막 세대에 속하셨던 그분들이, 일 년을 통틀어 일주일이 되지 않는 명절 연휴동안 숱한 손자들과 일일이 친밀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례식장은 쾌적했다. 빈소 입구부터 때깔 좋은 화환이 도열해 있었고, 영정 곁에는 주일대사 권철현의 이름을 단 꽃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아들들은 고만고만하게 살지만, 외동딸의 남편은 지역에서 유지 노릇 하며 사는 덕분에 얻은 장식품이었다. 접객실은 거의 고모 내외의 지인들로 채워졌다. 아버지를 찾아온 조문객은 없었다.

식장을 지킨 상주만 열에 육박하는지라 할 일이 마땅찮아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 앉아 『단테 신곡 강의』와 『타인의 고통』을 종일 읽었다. 첫날밤 혼자 소주병을 들이키다 늦게까지 몸을 추스르지 못한 고인의 다섯째 아들을 제외하면, 아비 잃은 자식들의 슬픔은 굳어진 얼굴 밖에 드러나지 않아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님이 분향할 때마다 상주들이 뱉는 곡소리 속에서 백부와 숙부들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다. 출상을 몇 시간 앞둔 새벽에 사위는 손수 부조함을 뒤집었고, 아들 넷은 지폐를 헤아리는 매형을 제지하지 못했다.

부산에서 선산이 있는 밀양까지는 이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상여로 운구되었지만, 할아버지의 관은 트럭에 실렸다. 고관의 화롱은 장지까지 쫓아왔다. 손자들은 하관을 보지 말라 하여 묘지 아래 비탈에 머물렀다. 봉분이 다 만들어지자 상복을 태우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눈시울을 적셔 본 적 없이 모든 절차가 끝났다.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고등학교 동기들의 부모들은 모두 오만 원이나 십만 원을 놓고 갔는데, 고모부 쪽 부조금은 죄다 삼만 원짜리여서 실속이 없더라고 성토하셨다.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으셨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육신은 이날 묻혔지만 할아버지의 인격은 언제쯤 장사지내졌던 걸까. 태양이 눈 부시지 않았더라도,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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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學徒의 貧困

이번 학기에는 다섯 과목을 듣는데 중간고사를 하나도 치르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까지 서양법제사 보고서를 하나 써내야 했을 뿐이었다. 서양법제사는 본래 게르만법을 가르치는 과목이었는데, 서양법제사와 로마법을 모두 김기창 교수님이 전담하시면서 로마법 2로 강의하고 계신다. 보고서 주제는 ‘actio empti에 대해 설명함’이었는데 문헌을 뒤져보니 로마법 1을 듣지 않은 탓에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별수 없이 조규창 선생님이 쓰신 교과서를 며칠 동안 통독해서 로마법을 개관하고 다시 문헌을 조사했다. 국문으로 작성된 논문은 찾을 수 없었고 곽윤직이 대표편집한 민법주해와 양창수의 민법연구에서 관련된 글을 몇 개 찾아냈다. 표절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시기에 내용을 온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글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문헌을 정독하면서 보고서 작성에 인용할 만한 구절을 머릿속에 대충 세운 논지 순서대로 전부 공책에 옮기고 일일이 쪽수를 적었다. 그 작업이 끝나자 문헌은 제쳐놓고 공책만 보고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남의 글을 단순하게 짜깁지 않은 A4 용지 3매 분량의 ‘보고서’를 쓰는 데 엿새가 걸렸다.

로마법을 배우니 민법의 뿌리가 보인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소위 담보책임의 본질을 둘러싼 법정책임설과 채무불이행설의 대립이 얼마나 뜬금없는 맥락에 놓여 있는지 알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 땅에 던져진 법을 완결된 체계로 여긴 채 펼쳐지는 해석론이 어찌나 조악해 보이던지. 이천 년 전에 정리된 법리가 현행법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점이 참으로 많다 보니, 중세를 근대로 이행시킨 3R의 하나로 로마법 계수를 꼽는 이유를 세밀하게 느끼고 있다.

로마법이 근대법의 원형을 보여준다면, 비교법은 법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많은 학자가 유학 다녀온 덕에 간접적으로라도 접할 기회가 많은 독일은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제외하고, 불란서와 영국 및 미국 법제도를 개관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실정법해석론보다 무척 흥미롭다. 특히 재판제도 운용법은 거시비교만 해보아도 한국에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게 된다. 조규창 선생님의 연륜에서 비롯하는 거침 없는 언사를 듣는 일도 퍽 즐겁다.

“이혼 의사가 합치된다고 숙려기간도 없이 합의이혼을 그냥 인정하는 게 말이 되냐? 부부가 치고받고 싸우다가 이혼하자고 도장 찍을 때는 심신상실상태이지 않은가.”
“매매 담보책임 규정을 임대차랑 도급에도 준용하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같어? 하여튼 우리 민법은 병신같이 만들어놔서 도대체 연구하고 싶지가 않아.”
“자네들은 종교가 없나? 그러면 안 되지. 서양문화를 이해하려면 기독교를 잘 알아야해. 나는 김일수 교수처럼 광신도는 아니지만.”

법철학 시간마다 발제를 맡은 학생들이 평소에 얼마나 토론을 해보지 않았는지를 체감한다. 법사상사는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이상돈 교수가 법철학 수업을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꾸리는 까닭은 현실 법문제에서 철학하는 태도를 함양하고자 하는 데 있다. 나와 지인 두 명은 어찌하다 보니 첫 시간에 발표했는데 주제는 법과 도덕이었다. “도덕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 이런 추상적인 논제를 던지면 학부생 수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철저히 구체적인 문제를 다뤘다. 간통죄를 존속시키고 이혼에서 파탄주의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며 동성혼을 금지하고 있는 결혼제도는 핵심도덕을 수호한다기보다 특정한 윤리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각각의 쟁점별로 자료를 제시하고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학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발제자가 준비해 온대로 토론이 진행된 적은 우리가 준비한 주제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이런 식이었다. “법경제학에서 법학이 경제학의 침범을 어디까지 법학이 용인할 것인가?”, “법과 권력이나 자본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방안으로 어떠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전통법과 전문법이 같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존엄한가?” 세미나 경험이 부족하니까 논제를 선정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실제 사회 현상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법률해석론에만 골몰하는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면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에 등장한 교양 없는 인간이 된다고 확신하지만, 어쩌겠는가. 쉰소리를 늘어놓아 봤자 시험에 합격한 그들은 한없이 위대할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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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眠

머리가 여물려면 한참 멀었다. 나는 다르리라 앙양된 마음을 겨우내 생활에서 실없이 드러냈고, 내년 2월에는 유효기간이 만료될 토익 점수를 새로 마련하려 지난달 토익 고사장에 들어가야 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열람실에서 낯이 익은 어린 친구들이 2차 시험 교재를 들고 교정을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새로 산 새하얀 민법강의가 부끄러워 칸막이가 없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쓸모없는 자의식을 무너뜨리고 질시로 무장한 속물이 아니 되고서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고상한 놈이 될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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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國

한 게시판에 최장집과 리영희가 우파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그럼 스탈린이랑 김일성 빼면 전부 우파냐는 반문을 받았다. 좌파와 우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밝혀달라고 답했더니, 며칠이 지나고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사회주의 붕괴 전에는 좌우 기준이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였지만, 이제 공동체주의와 평등과 국가를 중시하면 좌파고 개인주의와 자유와 시장을 중시하면 우파라는 요지였다. 참으로 미국적인 입장이다. 그 잣대로 평가하면 신자유주의자를 제외하면 전부 좌파다. 미국 민주당을 좌파라고 하기도 했으니 일관된 논지를 펼치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렇게 얻은 개념을 몰역사적으로 한국 상황에 그대로 대입하는 수준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박사까지 딴 사람들이 내뱉는 헛헛한 소리를 보며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건지 정말로 저런 말들을 진실하게 믿는지 궁금했는데,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모범생답게 개념은 어느 정도 배워서 머릿속에 집어넣지만, 비판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모자란 집단. 저치들의 내면에는 조금도 어긋나는 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거짓말을 거듭하다 나중에는 제 거짓말을 거짓말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흡사한 꼴이다.

홍기빈은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따위의 책이 하버드생이 필수적으로 읽는 도서라는 점은 미국 지성계의 위기를 드러내는 징후 중 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예전에 박노자 블로그에서 저런 식의 이념관을 가진, 미국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한다는 대학원생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것도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미국으로 학문의 중심축이 넘어갔는지 의아하다. 단지 정치경제적인 힘 때문만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데. 미국 지성사를 한 번 훑어보면 대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수험생 주제에 2007년 동안 읽은 책이 113권이었다. 물론 그 중 52권은 갈리마르 데쿠베르트 총서였고 19권은 소설이었다. 나머지도 법학 서적 12권을 제외하면 읽는 데 품이 들어가는 책은 아니었고. 그나마 올 한 해 붙인 마음에 드는 독서 습관은 자기 전에 데쿠베르트 총서 중 한 券의 한 章을 읽고 잤다는 점이다. 읽는 책 권수를 늘려보려는 방편이었는데, 이 시리즈를 다 읽고 나면 살림 지식총서 같은 다른 문고판 총서류 중 호기심이 동하는 걸 일주일에 한 권 골라 읽을 작정이다. 다만, 두 달만 좀 참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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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특검을 수용한 속셈

일단 특별검찰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성공한 주가조작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르고. 설령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고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공소를 제기한다 해도, 취임을 막을 수는 없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당선무효 판결은 어디까지나 선거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이 장로님은 예전에 이미 겪어보신 바 있지. 다른 범죄 때문에 피선거권을 상실하여 당선의 효력이 상실될 수도 있지만, 취임 전에 종국판결이 내려질 리 만무하다.

대통령 임기 개시일이 되는 순간 불소추특권을 누리게 되므로 기소된 상태라 해도 사실상 제대로 된 수사가 불가능하다. 만약 헌법 84조를 엄격하게 문리 그대로 해석해서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만 안 받을 뿐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은 중지되지 않는다고 치자. 대법관 나리들이 한 번 용트림을 내뿜으셔서 자격정지를 병과하실 수 있을까. 국회의원 중에 이렇게 배지 잃어버린 사람이 있기는 했다만, 형법 43조 2항으로 대통령직까지 날릴 수 있다면 우와…. 아무리 생각해도 특검 때문에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삼성 특검이 이건희를 기소할 확률보다 낮아 보인다.

반대로 대통령 재직 중에 재판이 중지된다면 미래의 대통령님께서는 일반사면을 내리시는 건 아닐까? 일반사면은 죄를 범한 자를 상대로 형을 선고받았으면 그 효력을 소멸시키고 아직 받지 않았으면 공소권을 소멸시키니, 자기를 사면하고 나면 퇴직해도 법원은 면소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되어 있지 않으므로 못할 이유는 없다. 국회 동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정권심판 분위기가 몇 달 더 간다면 한나라당의 압승일 테고. 2004년처럼 물갈이되기 전에 탄핵 소추라도 한번 해보고 싶겠지만 의석 수가 모자라니 원천 불가. 게다가 탄핵이 의결된다 해도 취임 전의 일이 탄핵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탄핵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 있다. 하기야 헌재 판결은 자신을 기속하지 않으니, 요즘 대한민국 법대생들이 헌법 배울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판결 내리실 때의 기개라면 못 뒤집으리라는 법도 없다만.

이래저래 경제사범을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 이 나라 공법학자들 머리도 참 지끈지끈 거리겠다. 비천한 1차생은 덕분에 난삽한 선거법 관련 규정을 입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혹시 내년에 한 문제 출제되면 답례로 총선 때 우리 동네 지역구에 노동당이랑 사회당 후보 없을 경우 당신 소속 정당 후보한테 한 표 줄게. 누구처럼 탈당하면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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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圖書館을 나오면서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사생활’ 식으로 말하면 요즘 데카르트처럼 일어나고 칸트처럼 밥 먹고 있다. 늦게 일어나서 돌아올 불이익이 눈앞에 있지 않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휴대전화가 없으니 밥 먹는 사람들과 반드시 정해진 시각에 만나게 된다.

성격이 조금씩 예민해진다. 아흐레 전, 안 그래도 2학기 수시 고사장으로 써야 한다고 모든 열람실을 하루 동안 못 쓴다고 해서 좀 울적한 상태였는데, 열람실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몰상식한 놈에게 아량을 베풀지 못하고 한마디 해서 쫓아냈다. 경제신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참았을지 모른다. 저런 신문을 보는 인간은 존중할 수가 없다. 논조를 떠나 저기서만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있어서 봐야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리도리. 생각 없이 저런 걸 곁에 두면 개념이 뒤집히기 쉽다. 삼성의 증뢰행위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는 얘기를 거침없이 써대는, 투기와 투자를 구별 못 하는 理財新聞들을 보고 있노라면 채만식의 ‘치숙’이 자꾸 떠오른다.

“다른 게 무어요? 경제는, 돈 모으는 것이고 그러니까 경제학이면 돈 모으는 학문이지요.”
“아니란다. 혹시 이재학(理財學)이라면 돈 모으는 학문이라고 해도 근리(近理)할지 모르지만 경제학은 그런 게 아니란다.”

하기야 열람실을 하루 못 쓰게 한다고 분개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학생에게 옹졸하게 욕을 하는 나는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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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選 觀戰

작년 연말에는, 그래도 이 맘 때쯤이면 슬슬 군부독재세력의 후예가 집권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 줄 알았다. ‘개혁 우파의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으로 개요를 짜둔 글은 완성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한국에 만연한 진보-보수 담론 대신 근대 3대 정치이념으로 한국근현대사를 대충 훑어 보고, 진보라는 개념이 쓸모없다고 풀어 볼 작정이었는데.

아무래도 지랄 맞은 모교가 대한민국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한국 소재 대학교가 될 모양이다. BBK건 뭐건 어떤 종류의 부패 혐의도 그의 지지율을 깎을 수는 없어 보인다. 골리앗 같은 이명박도 이 돌멩이라면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김경준 충격 고백!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최장집은 누구 말마따나 한국에서 유일하게 내놓을만한 사회과학자답다. 장하준은 영국 대학 교수니까 제쳐놓자. ‘어떤 민주주의인가’도 조만간 구해 봐야겠다.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 본다.

무능한 민주화 세력보다 부패하지만 유능한 산업화 세력이 더 낫다거나 또는 민주화 세력의 집권 10년 동안 더 나빠졌다는 보수의 구호를 어떻게 보나?

=민주화 세력이 무능하다는 건 설득력이 없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어떻게 됐는가라는 역사적 조건과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 해방 이후 1987년까지 권위주의, 냉전 반공주의의 이념적 기반과 60~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졌다. 87년 민주화 이전의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다.

또 특정 국면에서 힘이 됐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가져오고 군부를 패퇴시킬 수 있었지만, 국가를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건 훨씬 어려운 얘기다. 진보개혁 세력이 무능하다고 보기보다 진보개혁 세력이 대안적인 발전 비전과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자신들의 관료, 자신들의 전문가층을 형성하는 데 부족했다고 한다면 말이 된다. 그렇지 않고 진보는 무능했다고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조건에 무지하거나, 정치적인 효과를 노린 주장이다. 87년 이후 민주화 세력은 외환위기의 유산을 온전히 떠안았다. 앞선 구질서를 정리하고 개혁까지 해야 했다. 막중한 과제를 한꺼번에 어깨에 짊어졌다. 그것은 사실 민주화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역사의 구조적 문제였다. 내가 노무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를 사례로 들어 민주화 세력이 했어야 할 과제들이 안 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들이 안고 있는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 비판이다. 당연히 나도 민주적인 정부가 잘되길 바란다. 그러나 비판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를 유능하다고 얘기하는 건 과장이다. 관료가 얼마나 형편없었는가는, 1997년 외환위기가 잘 보여준다. 외환위기는 재벌과 관료의 문제점들이 합쳐져서 나타난 재난이었다. 외부로부터 변화가 닥쳐오고 있었을 때 거기에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백일하에 보여줬다.

문제는 좌파와 개혁이라는 수사를 붙여주기도 민망한 우파 모두 운동의 정치에만 익숙해서 조직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에는 능하지만 정작 실무를 담당할 전문가를 키워내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 하다못해 이정우와 정태인 같은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윤종훈 회계사를 품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의 모습도 참…. 그뿐만 아니라 외무고시 출신 前 외교부 사무관 등 민노당에 힘 좀 보태려고 갔던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뿌리 내린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은 과장 좀 보태서 여의도 한 바퀴 돌만큼 한나라당에 길게 줄 서 있다고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진다면 그네들도 등을 돌릴 테지만. 금배지 노리고 노란 깃발 아래 섰던 무리는 자연스럽게 파란 깃발 아래로 우르르 몰려 갈 테지. 문국현이 창조한국당을 건전한 우파 정당으로 이끌고 나갈 가능성도 낮다. 선거 광고할 돈도 부족하다 하니 총선 때까지 조직을 건사하기나 할까.

개인적으로는 민노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할 것이냐, 사회당에 표를 던질 것이냐 고민 중이다. 집단적인 투표 포기 선언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던데, 글쎄다. 정치적 무관심과 과연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까?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 중에 보면 투표용지에 ‘전부 지지하지 않음’이란 항목을 만들어 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가 각하당한 게 있다. 선거 거부 행위는 제도적으로 무의미하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기도 쉽지 않다. 민주주의가 대의제로 성취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선거를 거부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 요구를 담기 위한 투표 포기는 덧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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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明

시력이 더 나빠지는 걸 느낀다. 얼굴 분간이 예전보다 힘들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낯 모르는 이를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일부러 모른 체 지나갔다고 느끼게 한 사람도 있을 법하다. 키가 자라지 않은지 곧 10년인데 왜 자꾸 근시가 심해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이러다 눈이 멀어 버리는 상상을 하며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도 근시로 맹인이 되는 경우는 없다는 소리를 듣고 안도했지만. 새로 안경을 맞출까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는데, 독서에 지장은 없고 어차피 원경을 또렷이 보려면 도수를 많이 높여야 할 테니 그만두었다. 안경알 값만 십 수만 원에 육박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 조영남 안경을 끼고 다니던 시절에 비하면 안경 모양새도 많이 예뻐졌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내 시력에 필요한 렌즈는 플라스틱 압축이 되지 않아 유리알을 써야 했으니 안경 제작 기술도 계속 발달하는가보다.

지난주는 선택과목으로 고를 법철학을 공부했다. 올해 들어간 시험장 고사실에서 국제법, 경제법, 노동법을 고르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지하철을 오가며 황산덕 저 법철학을 대충 통독한 상태였는데 25문제 중에서 15문제를 맞췄다. 이동희 저 법철학 요해를 한 번 읽고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기출 문제를 풀어보니 180문제 중 27개를 틀렸다. 기출문제만 확인해도 실전에서 오답 낼 일이 없을 것 같다. 고등학교 윤리에서 서양 철학을 배울 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뼈대로 학자들을 분류하면 대충 얼개가 파악되었듯이, 문제 되는 학자가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 중 어떤 경향에 가까운지만 대충 파악해도 객관식 지문 속에서 정답을 알아낼 수 있다.

단답형 지식을 익히는 일도 익숙하지 않은 분야를 처음 공부할 때는 꽤 효율이 좋다. 법철학 교과서를 세 권 정도 읽으면서도 줄기가 잡히지 않았는데 이제 법사상사의 흐름이 대충 그려진다. 근대 학문으로서 법학은 확실히 법실증주의와 함께 탄생하였다. 마키아벨리가 도덕으로부터 정치를 분리했듯 법실증주의는 도덕과 정치로부터 법을 분리했다. 개념법학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은 판덱텐 법학이 자리를 잡던 시절부터 존재하였지만, 법률 삼단논법이라는 고전적 법학방법론을 정초하면서 법학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 업적이다. 법실증주의가 등장하기 전 법철학이라고 말해지는 내용은 죄다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생각이었다. 황산덕이 켈젠의 순수법학을 그리 찬양한 까닭이 이제 짐작이 간다. 물론 그들이 주장한 바는 이미 극복되었지만, 자연법론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법실증주의가 없었다면 법학이 법학으로서 존립할 수 있었을까.

전공 학문의 사상사를 훑고 나니 그토록 싫어하던 전공에 대해서도 애정이 생겨나는 기분이 든다. 법학을 밥학에 머물지 않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근대 사회와 법을 연관시켜 연구한 학자는 베버와 웅거밖에 없었다. 기초법학 개괄서를 훑고 나면 이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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歡送

어제는 살인을 했고 오늘은 강간을 했다. 내일은 절도를 할 차례다. 형법 각론을 학습하는 사람이 하는 우습지도 않은 우스갯소리. 앞으로 닷새면 기본강의는 끝나고 기출문제를 정리하게 된다. 사실 보름은 걸릴 듯. 그러면 남은 일주일 동안 선택과목을 한 번 보면 구월이다. 막판에 볼 수 있는 교재는 어차피 한 권이라 생각하니 객관식 판례집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 있다. 민법은 핵심정리만으로 많이 부족할 테니 권순한 객관식 판례집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하겠지. 요령 있게 밑줄 그으면 중복되는 내용 없이 빨리 훑어 볼 수 있게끔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형법 판례는 요론에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하지만, 헌법 판례는 정회철 기본강의만 봐서는 부족하다고들 한다. 판례 교재를 통해 전문을 한 번 통독해 두어야 불안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시간을 뽑아낼 수 있을까. 추석 연휴에는 선택과목 문제집을 풀려고 하는데. 하루에 판례 몇 개, 이런 식으로 통학 시간에 짬짬이 봐서는 효율이 있을지. 아니면 남은 기간에 기계처럼 몰두해서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수가 있다. 일단 이쪽으로 노력해 보기로 한다.

지난 화요일에 신촌에서 H 선배의 환송회가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선배가 바로 다음에 도착해서 둘이서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연간 5만 달러가량의 비용을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6년 이상 걸릴 박사 과정.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 얼마 전 석사 논문을 소개하던 자리에 갔더라면 공부 내용에 대해서도 좀 대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약간 아쉽다. 형은 내게 꿈을 잊지 말고 관심을 놓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말해주었다. 내 꿈은 무엇인가. 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체계적인 지적 훈육을 받아 보고 싶다. 한국 대학원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외국에서도 밥학을 공부하겠다는데 돈을 대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더라. 그저 충고대로 눈앞의 목표에만 파묻히지 않으려 할 뿐.

이제 출국하면 몇 년 동안 만나기 어려울 탓인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이제 막 제대했다는 K는 서로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서먹하지 않아 좋다고 하였다. 가치관이 완전히 상반되지 않는 사람들이니 그렇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더니, 자신이 투신했던 학생회가 군 복무 중 거의 무너진 모습을 보니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과는 왠지 불편하다는 말을 꺼냈다. 우리가 학생운동의 막을 내린 세대가 되리라 다른 K가 언급하였다. 2002년에는 열심히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친구들 중 몇은 고시생이 되었다.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다는 어떤 선배의 소식은 조금 놀라웠지만 그리 씁쓸하지는 않았다. 정대화 교수를 돕던 친구들도 이제는 완전히 결별한 모양이었다. 취업, 대학원, 고시. 이십대 중반 청년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저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학을 떠난 선배가 귀국할 즘에 다시 이런 자리가 있다면 그날 모인 사람들은 이날처럼 편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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